- ▲ 문갑식 선임기자
[오늘 국군의 날… 언론사 첫 이지스함 동승]
반경 1000㎞ 표적 1000개 추적
적 레이더에 안 잡히려 내부에 무기 숨겨 겉은 밋밋
海士 성적 3위내 장교만 선발
도서실·체력단련실 등 갖춰 함내에서 긴급수술도 가능
27일 오전 8시30분 부산해군기지. 길이 166m, 폭 21m, 높이 49.5m의 세종대왕함은 4500t급 왕건·대조영함보다 밋밋해 보였다. 레이더를 피하는 스텔스(Stealth) 구조여서 구축함과 달리 5인치 함포와 MK41 수직발사대만 외장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사정이 달라졌다. 지휘부가 머무는 함교(艦橋) 양옆은 팔각형 방패 모양의 스파이1DVS 레이더가 달려 있다. 2009년 북한이 쏜 대포동2호 미사일을 90초 만에 잡아냈으며 1000㎞ 내 1000개 표적을 동시 추적할 수 있다.
공격 목표가 정해지면 사거리가 170㎞인 함교 앞 대공 SM2와 그 앞 5인치 함포(사거리 100㎞)가 불을 뿜고 왼쪽 중간에는 150㎞를 날아가는 국산 해성(海星)대함미사일이 있다. 근접한 적은 분당 4200발을 쏘는 골키퍼가 막아낸다.
후미 오른쪽엔 길이 2m가량의 순항미사일 '천둥'과 대잠(對潛)미사일 '홍상어'가 장착돼 있었다. 맨 뒷부분에는 2대의 UH-60 '블랙호크'와 링스 헬기 탑재공간이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5000억원이 투입된 이지스시스템이다. 김태환 작전관(소령)은 세종대왕함을 "움직이는 수퍼컴퓨터"라 했다. 함교 밑 CIC(전투상황실)에서 최첨단 시스템이 포착한 적의 움직임은 조기경보기 '피스 아이'와 전 함정에 유기적으로 전달된다.
- ▲ 우리 해군의 첫 이지스함인 세종대왕함이 사상 최초로 조선일보에 동승을 허용했다. 본지 문갑식 선임기자가 지난 27일 아침 8시30분 부산작전기지에서 세종대왕함에 올라 이어도를 거쳐 29일 해군 제2함대의 모항인 경기도 평택항으로 귀항하는 2박3일간의 훈련에 참가했다. 맨 앞부터 대조영함, 왕건함, 세종대왕함이 태극기를 휘날리며 자랑스럽게 우리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 오른쪽에 보이는 섬이 마라도다. /해군 제공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기에 세종대왕함의 인력은 전군에서 최고다. 사관들은 해사(海士) 졸업 성적 3위 이내로 제한됐고 부사관도 최고 엘리트만 선발했다. 여군은 병기관 서순애 대위 등 사관 2명을 포함해 12명이다.
현황판엔 300명이 24시간 수행하는 임무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황상현 함장(대령)은 "세종대왕함의 승조원은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움직인다"고 말했다. 이렇게 체력 소모와 스트레스가 크기 때문에 내부는 콤팩트하면서도 깔끔했다.
- ▲ (왼쪽 사진)‘블랙호크’ UH-60 헬기가 세종대왕함 뒷부분 갑판 위에 착륙하고 있다. 뜨거운 열기가 제주도 앞바다 물결에 반사되고 있다. /문갑식 기자
2곳의 식당은 사관과 병사 메뉴가 같았다. 아침 7시, 낮 12시, 오후 5시에 식사, 밤 8시 30분에 야식이 나온다. 메뉴는 미역국·우엉조림·햄과 소시지·계란스크램블·밥·김치(아침), 계란말이·황태해장국·양배추버섯볶음·잡채·밥·김치(점심), 된장아욱국·호박전·불고기·양배추버섯볶음·당근과 오이쌈장·상추와 깻잎(저녁), 빵·우유·컵라면(야식)으로 푸짐했다. 함내에는 긴급수술까지 할 수 있는 신체관리실·도서실·체력단련실·PX도 있었다. 병사 간 구타 방지를 위해 안전관은 1시간마다 함내를 순찰하고 있었다.
28일 새벽 4시 세종대왕함이 41m 해저에서 솟구친 36m 높이의 해양과학기지 근처에 도착했다. 동경 125도 10분 56.81초, 북위 32도 7분 22.63초. 마라도에서 149㎞ 떨어진 이어도(籬於道), 어부들이 피안의 땅이라 여기는 그 섬이다.
- ▲ 세종대왕함의 함교. 현대 전투는 사람의 싸움이 아니라 두뇌의 경쟁이다. 복잡한 컴퓨터와 각종 정보를 다루기 때문에 세종대왕함 사관과 부사관들은 최정예로 편성된다. /문갑식 기자 gsmoon@chosun.com
전설처럼 이곳에는 꿈이 샘솟고 있다. 천연가스 72억t, 원유 1000억 배럴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자원만 23가지나 된다. 중국은 1999년 그 이어도를 자기네 것이라고 생떼를 썼다. 최근엔 중국 어선들이 제 집 안마당처럼 누비고 있다.
자원 못지않게 동태평양~동중국해~제주남방 해역에는 나라의 사활이 걸려 있다. 천연가스·원유의 99.7%가 여길 통해 들어온다. 전시(戰時) 증원군과 물자도 이곳을 거쳐야만 한다. 이 '병목'이 막히면 한국은 2주 내 궤멸하고 만다.
이런 급소에 그간 우리 해군은 접근하지 못해왔다. 호위함·초계함만으론 원양 작전을 벌일 엄두를 못 낸 것이다. 겨우 해경함만 섬 주변을 돌며 혹시 모를 철부지 중국인들의 망동을 감시했다. 그 한(恨)이 마침내 이 새벽 풀렸다.
한국 첫 이지스 세종대왕함이 4500t급 구축함 왕건·대조영함을 거느리고 기동훈련을 벌인 것이다. 기자는 2박 3일간 부산~대한해협~제주앞바다~마라도~이어도를 거쳐 해군 2함대의 모항(母港) 평택으로 귀항하는 훈련에 참가했다.
2008년 5월 1일 부대 창설 후 이지스함은 외부인의 거주를 허용한 적이 없다. 모두 극비 시설이기 때문이다. 이지스(Aegis)는 신화 속 제우스가 아테나 여신(女神)에게 준 방패다. 벼락에도 끄떡없고 흔들면 폭풍이 일어났다고 한다.
해상 훈련을 마친 세종대왕함은 29일 낮 12시 평택항으로 귀항해 곧바로 작전권 반환에 대비해 선박과 항공기 통제를 수행한다. 천안함 용사들의 넋이 숨 쉬는 이곳에 세종대왕함은 처음 들어왔다. 마침 전날 세종대왕함의 전투 구호는 이랬다. '천안함이 지킨 바다, 이제는 우리가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