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blog.daum.net/wanjeong/588


120108 히5:1-7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기 전에 기도하러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실 때 베드로, 요한, 야고보 세 제자를 데리고 가셨는데 그들에게 말씀하시길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 ”하셨다.(마26:38) 그리고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옴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기도하셨다.

이상 볼 때,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매우 큰 고통으로 여기셨고 가능하면 이 죽음을 피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올리셨던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두려움 없이 쉽게 맞지 않으셨다. 아무 고통의 감정 없이 기계적으로 쉽게 맞으셨던 것이 아니다. 우리와 똑같이 죽음을 두려워하셨고 십자가를 큰 고통으로 맞으셨다.

예수님은 그때 기도하실 때 얼굴을 땅에 대고 하셨다.(마26:39) 간절한 기도의 모습이다. 그리고 기도의 땀방울이 떨어져 핏방울 같이 되었다.(눅22:44) 얼마나 애절하게 기도하셨던 것일까! 오늘 본문에서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하였다.(히5:7)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첫째,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은 얼마나 큰 고통과 눈물의 죽음이었던가 깨닫게 된다. 우리 대신 죽으신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에 우리는 뭐라 말해야 할까?

둘째,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에게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통곡과 눈물로 쏟아내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의 기도는 솔직해야 한다. 우리의 기도는 마음을 쏟아내는 기도여야 한다. 예수님은 십자가 지고 가는 당신을 향해 눈물 흘리는 여인들을 향해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어라” 하셨다.(눅23:28)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이렇게 들린다.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 일이 얼마나 많으냐? 너희는 왜 울지 않느냐?” 예수님의 이 말씀에 이렇게 기도하게 된다. “예수님, 내 눈이 밝아져 이 세상의 울어야 할 일들을 볼 수 있게 해주세요. 예수님, 내 눈이 밝아져 또한 나 자신의 울어야 할 처지를 보게 해주세요. 그리고 예수님, 무엇보다 당신을 신뢰하는 마음을 주셔서 당신 앞에 나의 모든 힘겨움과 슬픔을 솔직히 쏟아낼 수 있게 해주세요. 당신이 겟세마네에서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요.”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의 끝은 십자가 지는 결단이셨다. 예수님은 당신의 고통을 놓고 기도하시다가 이어서 불쌍한 죄인들을 위한 기도를 하셨고 마지막으로 그들을 위해 십자가 지겠다는 결단을 내리셨다. 예수님이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실 때, 죄로 인해 심판당할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그렇게 기도하셨다.

새해 우리 교회의 표어는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다. 눈물로 말할 때 가장 호소력 있다. 기도할 때 가장 힘 있게 하는 것은 눈물로 기도할 때일 것이다. 새해, 우리 모두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에 힘쓰자. 눈물로 기도하기까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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