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토불이 영어학습법......"유학은 왜가?" (펌글)

.. "영어만 잘할 수 있다면 원이 없겠다."

누구나 한번쯤은 해봤을 한탄일 것이다. 중 고교 6년에 대학까지 10년간 중단없이 영어 수업을 받았지만 간단한 영어 한 마디 입 밖에 내기가 겁난다. 토익 토플에 텝스까지, 듣고 말하는 능력을 측정한다는 각종 시험을 준비해 꽤 괜찮은 점수까지 올려놓는다 해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외국어 공부는 현지 생활이 최고'라며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영어권 국가로 대거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풍토이지만 막상 당사자들은 "1년으론 어림도 없더군" 하며 신통찮은 반응을 보이기 일쑤다. 한국에서 교육받았던 대로 문법 중심의 사고를 유지하는 한, 또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공부를 하지 않는한 외국 현지 생활도 별 소용이 없다는 얘기일 것이다.

자타가 인정하는 영어 실력을 가진 이들 중에는 국내에서만 공부해도 하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훌륭한 영어 능력을 키울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굳이 미국에까지 가지 않아도, 나아가 미국인 선생에게 배우지 않아도 영어를 남부럽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방법이다. '토종 영어도사'들이 권하는 영어 학습법을 알아본다.

1. 영어 익힐 환경은 다 갖춰져 있다

미국에 살아도 한국인들끼리만 어울리면 영어가 늘 리가 없다. 반대로 국내에서만 생활해도 본인 의지에 따라 영어를 익힐 환경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서점에 넘쳐나는 각종 교재와 테이프, 회화·청취 학원, 영화와 비디오, AFKN(공중파 방송이 금지돼 지금은 케이블 TV 등을 통해 볼 수 있다)과 미국 라디오 방송….

게다가 새 천년의 화두이기도 한 인터넷 또한 영어 공부의 보고다. 국내 영어 학습 사이트 '네오퀘스트'는 97년 10월에 시작, 현재 정회원 12만명을 헤아릴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개설 멤버의 한 명인 오성호(33)씨는 "찾으려고 들면 널려 있다시피 한 게 영어 관련 자료"라며 "자신에게 알맞은 학습 방식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학원의 '미국인 회화' 강의가 영어 의사 소통 능력을 키우는 것이 사실이지만 바쁜 직장 생활에 쫓겨 준비나 복습 없이 단지 출석하는 데 급급하다면 과감히 다른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2. 발음을 소홀히 하지 마라

현재 중소기업 차장으로 있는 최모(38)씨. 90년대 초 영어에 대한 '한'을 풀기 위해 휴직계를 내고 자비로 미국 어학연수를 떠났다. 첫날 레스토랑에서 혼자 음식을 든 후 계산서를 요구했다.

"Bill, Please." 그런데 웬걸. 웨이터가 가져온 것은 계산서 아닌 맥주였다. 나름대로 혀를 굴려 발음했는데 현지인이 듣기엔 'Beer' 였던 것. 한국에서는 번듯한 대학을 나온 최씨는 낭패감에 맥주 한 병을 단숨에 비우고 다소 용기를 회복, 다시 한번 계산서를 외쳤으나 역시 또 맥주. 그날 그는 맥주 3병을 마시고서야 레스토랑 문을 나설 수 있었다.

발음은 우리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대단히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거리'로 발음해야 할 것을 '그리'로 발음한다고 상상해보라.

지난 80년 영남대 국문과 박사과정 도중 미국 유학길에 올라 현재 목회자의 길을 걸으며 국내에서 영어 관련 서적을 집필하고 있는 헨리 홍(52)씨는 "우리 몸의 70%가 물로 되어 있듯 영어의 70%는 발음과 리듬으로 되어 있다"고 말한다. 학원이나 소그룹 회화를 통해 미국인 강사와 공부할 때에도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들은 한국인들의 잘못된 발음 습관을 잘 알기 때문에 알아 듣는 것일 뿐"이라며 빨리 말하려 하기 보다 정확하게 발음하려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3. 단어, 특히 이디엄 실력을 쌓는 데 힘써라

영어 공부를 작심하고 해본 사람들 사이에 내려오는 격언(?) 중에 "읽어서 이해가 안되는 문장이 제대로 들릴 리 없다"가 있다. 아무리 상대방이 똑똑하게 발음을 해주어도 단어나 숙어를 모르면 알아들을 수 없음은 자명하다.

다국적 광고회사인 제이월터톰슨(JWT)의 김모(35) 부장은 "대학 시절 내내 사전을 달고 살았다"며 외국인 회사에 입사, 영어를 꽤 잘하는 것으로 소문난 지금도 "모르는 단어나 숙어 관용구 등 이디엄, 특히 동사와 부사가 결합된 동사구(phrasal verb)를 접할 때마다 반드시 그 뜻을 확인해야 실력이 는다"고 말한다. 김 부장은 이들 단어 숙어가 사용되는 일반적인 상황을 잘 보여주는 '주라기 공원' '라이징 선' 등 대중소설을 즐겨 읽는다고 한다.

4. 사전은 영어 정복의 최대 무기다.

'이것이 미국 영어다'(전 10권)로 유명한 재미 저술가 조화유씨는 "가급적 미국서 발행된 영영사전을 쓰는 게 좋다. 영영사전만 보아서는 그 뜻을 확실히 알 수 없을 때만 영한사전을 보라"고 조언한다. '영어 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라는 책으로 현재 외국어 서적 분야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있는 정찬용씨도 같은 견해다. "영한 사전 한 번만 펼쳐보면 간단히 해결될 것을 시간을 배 이상 투자하며 영영사전을 계속 찾아봐야 하는 이유는 '영어→한국어→영어'라는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네오퀘스트의 최완규(32) 대표는 "'happy'라는 단어에 절로 '행복'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게 아니라 웃는 모습의 이미지가 떠올라야 한다"며 상황 설명하듯 해설과 용례가 많은 영영사전을 죽죽 읽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동사가 그러하며, 영한사전은 광합성이니 췌장암이니 하는 일반명사의 뜻을 참고하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5. 듣고 듣고 또 들으면 못 들을 리 없다

고등학교 시절 토플 시험을 준비, 620점을 받아 서울 용산 미국 메릴랜드대학 한국분교에 진학했던 박지훈(28)씨가 주로 쓴 학습법은 AFKN 시청. "영어가 우리 말 보다 2.5배 빠르다는 얘기도 있던데 처음 6개월 동안 매일 2∼3시간 씩 집중해서 보았더니 차츰 들리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해하기 힘든 드라마보다 뉴스를 많이 봤는데, "저거 내가 아는 단어다 하는 사이에 이미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게 마련이므로 처음 들을 때는 흐름을 중요시, 얘기의 분위기만 파악해도 성공한 셈"이라고 말한다. 대학 졸업 후 200여편의 영화 자막을 번역했고, 최근 대흥행 방화 '쉬리'의 영역을 맡기도 했던 박씨는 "현지인이 제 속도로 말할 때 들리지 않는 표현은 외국인인 우리로서는 결코 회화에 써먹을 수 없다"며 듣기 연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6. 백문이 불여일성. 뻔뻔스러울 정도로 말하라

한국 화이자제약 노정순(39) 부장은 대학교 3학년 이후 만 5년 동안 주 2회 미국인과 회화 모임을 가졌다. 90여분간의 수업 내내 노씨는 "영어를 한 마디라도 더 하기 위해 뻔뻔스러울 정도로 나서곤 했다"고 한다. 말을 입 밖에 내어 봐야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알 수 있고, 실수를 통해 배우는 표현만큼 기억에 남는 것도 드물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노씨는 수업 과정을 카세트에 전부 녹음, 집에서 반복해 들으며 모임 때 놓쳤던 문장들을 새겼고, "본인이 말하는 동안에는 맞았는지 틀렸는지 잘 몰랐던 부분의 오류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고 말한다.

오성호씨는 "자기 입을 통해 나오는 영어를 어색해 하는 게 문제"라며 "노래방에서 팝송이라도 불러 자신의 영어 소리에 친숙해질 필요가 있다"고 권한다. 하루에 단 5분이라도 큰소리로 영어 문장을 읽는 습관을 들이고, 좀 멋쩍더라도 가족이나 친구 또는 직장 동료끼리 영어로 말하는 기회를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7. 외우는 수고 없이 유창한 회화는 없다

이해와 암기는 모든 공부의 양대 축이다. 한국 말 구사의 다양한 실례를 보더라도 반복해서 들었기 때문이든 의식적으로 암기했기 때문이든 우리는 각자 머리 속에 외우고 있는 언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조화유씨는 "좋은 교재를 택해 배운 말은 무조건 외우라"고 권하고 있고, 헨리 홍씨 또한 "자주 쓰는 말을 중심으로 400∼500개 정도의 문장을, 천천히 말할 때와 빨리 말할 때로 구분해서 외우면 일상 대화에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영어병 10가지'라는 책을 쓴 박광희(40)씨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의 영어 회화 학습이 너무 '생활영어'에 편중된 감이 있다. 틀에 박힌 문장으로는 외국인과 만났을 때 몇분을 채 버티지 못할 것"이라며 "다양한 분야의 어휘와 표현을 익혀둬야 유창한 회화가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8. 영화는 잘 활용하면 최상의 교재다

마음 먹기에 따라 매일 1편씩 감상할 수도 있는 영화는 잘만 활용하면 훌륭한 영어 교재가 된다. 외교관 출신인 박영복(48)씨는 "아나운서와 같은 정확한 발음에서부터 말론 브랜도의 웅얼거리는 목소리까지 원어민의 온갖 발음을 접할 수 있는 영화는 최상의 영어 교재"라고 말한다. 소재가 무궁무진한 만큼 정형화된 틀을 벗어난 다양한 영어를 익힐 수 있고, 무엇보다 영어권 사람들의 정치·경제·사회·문화 상황을 더불어 배울 수 있다. 박씨는 "오래 된 일이지만 '세븐 일레븐'을 '편의점' 아닌 그냥 '711'로 자막 처리한 경우도 있었다"며 "외국인으로서 해당 언어권 사회를 이해하는 데에 영화만한 게 없다"고 누차 강조한다.

할리우드의 1급 시나리오 작가들이 극본을 담당,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대사로 채워진 영화가 많으므로 "처음에는 대사를 받아 적는 데 주력하고, 차차 숙달되면 영화내용을 영어로 요약하거나 감상문을 써보는 훈련을 해보라"고 박씨는 권하고 있다.

9. '고통스런' 공부는 얼마 못간다. 즐겨라

수준급 영어를 구사하면서도 끊임없이 공부하는 학구파로 사내에 이름난 김재홍(37) 제일기획 차장은 "영어 공부를 좋아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기가 좋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지치지 않고 학습할 수 있다"고 말한다. 팝송 가사를 달달 외운다든가, 미국 NBA 농구 중계를 빼놓지 않고 챙기면서 관련 서적이나 인터넷 사이트를 수시로 뒤져본다든가, 마음에 드는 영화 대사를 주인공 흉내를 내며 외운다든가 하는 것이 모두 영어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AFKN 전문강사 강홍식씨는 "한국에서 영어에 관한 한 뛰고 나는 사람들의 경우를 보면 본인들의 노력도 대단했겠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대부분 학창 시절부터 영어 과목을 무척 좋아했던 사람들이라는 점"이라고 자신의 관찰 결과를 말하고 있다.

10. 한국인임을 잊지 말자

영어를 배우는 이유는 단지 텝스나 토플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미국 경제 전문지 '비즈니스 위크'의 서울지국장을 맡고 있는 문일완(45)씨는 "국경이 실질적으로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 현 상황에서 공용어로 확고히 자리잡은 영어는 세계 시민으로서의 필수 요건"이라고 말한다.

정찬용씨는 "영어문화권의 우수성이 무엇에 기초하고 있는지, 특히 그들의 '개개인에 대한 개성 존중'과 '휴머니즘'의 바탕이 무엇인지를 영어를 통해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이 세계사의 주역이 될지, 그렇지 않을지를 결정할 변수들 가운데 영어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한국인임을 잊지 않으며 영어를 열심히 공부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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