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여고 1년 김수인



“조기교육이 별 거 있나요?”

우리 사회에 영어 조기교육 바람이 불기 시작한 지도 벌써 오래다. 우리말도 온전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어린이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것을 놓고 찬반 양론이 분분하지만, 아무튼 영어 조기교육은 이제 이 땅의 대다수 학부모들에게 일종의 ‘의무’처럼 됐다. 학원가에서 시작된 영어 조기교육 바람은 급기야 공교육 현장에도 들이닥쳐 이제는 영어가 초등학교 3학년 교실에 정규 교과목으로 버젓이 자리잡았다.

부산 동래여고 1학년 김수인양(金修仁·16)을 영어 조기교육의 대표적 성공사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김양은 지난 2월28일 치러진 토익(TOEIC) 시험에서 990점 만점을 받아 화제를 모았다. 성인들도 700∼800점 이상 받기가 쉽지 않다는 토익시험에서 어린 여고생이 만점을 받은 비결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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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부터 영어발음 익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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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와 얘기하기 전에 우선 김양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재미있는 것은, 김양의 부친인 동아대 김성언교수(金性彦·48)가 한문학자라는 사실. 한문학자 아버지와 영어 도사인 딸? 집안 내에서 이뤄진 동서양의 절묘한 화합인가?

알고보니 김양의 모친인 김상희씨(金祥姬·부산대 강사)가 불어학을 전공한 학자였다. ‘그러면 그렇지. 어머니로부터 체계적인 어학 교육을 받았겠거니’ 짐작하고 모친과 대화를 시작했다.

―불어학을 하셨다니 딸교육에 남다른 노하우가 있을 듯합니다만….

“그렇지 않아요. 초등학교 5학년 올라가기 직전에 수인이에게 초등학생용 영어발음 교재를 구해준 것이 전부입니다. 그 때 이미 주변에선 아이들에게 영어공부를 시키고 있었어요. 2학년 때부터 시킨 집도 있고. 우리집은 늦은 편이었어요.”

―어떤 교육 프로그램이었습니까?

“영어 선생님이 매일 전화를 걸어 영어로 대화하고, 집에서는 발음 위주로 만들어진 테이프를 듣는 프로그램이었어요. 수인이는 매일 30분에서 1시간 정도 꾸준히 테이프를 들었는데, 이때 귀가 트이지 않았나 싶어요. 6학년까지 2년간 참 열심히 했거든요. 그 사이에 제가 따로 가르친 것은 없고, 오히려 수인이가 제 영어 발음을 따라할까봐 많이 걱정했어요.(웃음)”(수인양 부모는 유학 경험이 없고, 국내에서 학위를 받았다.)

―수인양이 어학에 재능이 있지요?

“그때는 재능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다만 영어교재 테이프를 열심히 듣는구나 하는 정도였지…. 6학년 때에는 미국인이 강사로 나오는 영어학원에 보냈는데, 다른 아이들보다 레벨이 빨리 올라가기는 하더라고요.”

―그리고 나서 가족이 하와이에서 1년간 살다 왔다고 들었습니다만.

“남편이 하와이대학 한국학센터에서 연구하게 되면서 96년 2월부터 97년 2월까지 1년간 하와이에서 지냈습니다. 당시 수인이가 중학교 1학년 때였는데, 한 달 정도 지나니까 미국사람들 말을 다 알아듣는 것 같더라고요.”

―부모님께선 영어를 잘하세요?

“아이구, 잘하지 못해요(웃음). 애들 아빠는 하와이에 있을 때에도 한국학센터로 나갔기 때문에 우리말만 했어요. 그래서 발음을 알아듣기 어려운 사람을 만날 때에는 통역삼아 수인이를 데리고 다녔어요.”(웃음)

―하와이에서는 영어교육을 어떻게 시켰습니까?

“거기서도 특별히 뭘 시키거나 그런 건 없었습니다. 오히려 미국 아이들과 어울려 놀면서 수인이가 산 영어를 배운 것 같아요. 그런데 미국 학교에선 수업시간에 애들에게 책을 읽어오라는 과제를 내주더라고요. 책 한 권 읽어오면 점수를 주는 식이죠. 그래서 수인이가 점수를 따려고 책을 열심히 읽었는데, 그 과정에 자연스럽게 문법도 습득한 것 같아요.

그런데 얘는 책을 보면서 영한사전을 찾지 않았어요. 본인 말로는 그냥 ‘게스(guess, 추측)’한대요. 책 읽다가 정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저에게 물어봐요. 그때는 게으르다고 막 야단을 쳤는데, 지금은 그것이 오히려 영어를 모국어처럼 받아들이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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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영어로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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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수인양과 얘기해볼 차례. 전화선을 통해 앳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토익시험에서 만점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처음엔 저도 믿기지 않았어요. 본시험을 치르기 전에 집에서 몇 차례 모의시험을 해봤는데, 실제 시험이 훨씬 어려웠거든요.”

―시험에서 모르는 단어는 없었나요?

“물론 있었지요. 그래도 문맥을 보면 단어 뜻을 대충 짐작할 수는 있었어요.”

―요즘 어떻게 영어공부를 합니까?

“요즘엔 인터넷을 많이 봅니다. 인권운동가나 대통령 연설문같이 좋은 영문을 매일 찾아서 읽고, 독해집도 사서 보고, 유익한 미국 책을 골라서 읽기도 하고요. 최근엔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설명한 책을 읽었어요. 그리고 시간이 나면 CNN 방송도 봅니다.”

―아이구, 다른 공부할 것도 많을 텐데 하루에 그 많은 일들을 해요?

“영어 공부시간이 매일매일 달라요. 보통 하루에 30분 정도, 바쁠 때에는 10분밖에 못할 때도 있고, 어떤 때에는 하루종일 영어만 하기도 하고…. 방송도 시간 정해놓고서 보는 건 아니에요.”

―CNN은 고1 학생이 보기엔 좀 어렵지 않던가요?

“하와이에 있을 때 보니까 미국 아이들도 CNN은 보기가 어렵대요. 시사용어가 많이 나오니까 그런가봐요. 그런데 한국에 와서는 논술준비 때문에 신문을 매일 읽으니까 CNN 방송이 훨씬 잘 들리는 것 같아요. 요즘엔 국제뉴스나 다큐멘터리 보는 걸 좋아해요.”

―수인양이 영어를 잘하게 된 요인으로 가장 중요한 것을 꼽는다면?

“일상생활에서 모든 일을 항상 영어로 생각하려고 한 게 가장 크게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저는 처음 영어를 배울 때부터 그렇게 했던 것 같아요. 저처럼 영어공부를 하다보면 문법이 좀 달리는 걸 느끼게 되는데, 길게 보면 제 방식이 낫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영어를 잘하니 학교 영어수업이 따분하겠네?

“사실 하와이에서 막 돌아왔을 때에는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웃음). 그런데 막상 와보니까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좋은 자료를 교재로 많이 쓰고, 수업을 딱딱하게 이끌지 않아서 재미있어요.”

―수인양은 장래에 어떤 직업을 갖고 싶어요?

“외교관이요. 그런데 엄마는 자꾸 법대에 가래요.”(웃음)

1년간 외국생활을 했다고 해서 ‘당연히’ 영어를 잘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10년 이상 미국서 산 동포들 중에도 영어를 넘지 못할 장벽으로 느끼는 사람은 부지기수다. 그런 점에서 영어를 잘하고 싶은 사람은 김수인양의 사례를 ‘돌연변이’로만 치부하지 말고 철저하게 ‘벤치마킹(benchmarking)’해볼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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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홍 동아일보 신동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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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익ㆍ토플ㆍSSAT 만점 `영어 달인'의 공부법>
토익ㆍ토플ㆍSSAT 만점 `영어 달인' 김현수 양
(서울=연합뉴스) 김연정 기자 = 영어 사교육이나 외국에서 공부한 경험 없이 영어인증시험인 iBT 토플, 토익, SSAT 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김현수(15.대원국제중 3)양은 29일 'How to English'라는 책을 펴낸 이유에 대해 "한국 학생들을 지루하고 심심하고 반복적인 학습에서 구출하고 싶은 것이 소박한 꿈"이라고 설명했다. 2011.9.29 << 김현수양 어머니 제공, 사회부 기사 참고 >> yjkim84@yna.co.kr


대원국제중 3학년 김현수양 책 펴내

(서울=연합뉴스) 김연정 기자 = "'영어'라는 궁극적인 목적지에 도달하려고 많은 사람이 힘든 길을 선택하지만 제 눈에는 전혀 필요 없는 수고와 노력이 많았어요"
대원국제중학교 3학년 김현수(15)양은 영어 사교육을 받거나 외국에서 공부한 경험이 없는 '토종 국내파'이지만 영어인증시험인 iBT 토플, 토익, SSAT 시험에서 모두 만점을 받아 '영어 천재'로 통한다.

   최근 'How to English - 세계영어대회 챔피언 김현수의 영어공부법'(미래인)이라는 책을 펴낸 김양은 29일 "한국 학생들을 지루하고 심심하고 반복적인 학습에서 구출하는 것이 소박한 꿈"이라며 "그런 영어 공부 방식이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양은 4살 때 영어로 쓴 일기를 책으로 펴내고 방송 영어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어릴 때부터 '영어 신동'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영어능력평가시험인 텝스(TEPS) 1+급(961점), 한국영어검정(TESL) 국가공인 1급, PELT 1급을 받은 데 이어 최근까지 각종 국ㆍ내외 영어경시대회, 영어토론대회, 영어 말하기대회에서 대상을 휩쓸었다.

   이런 김양의 눈에 '영어공부를 재미없게 만드는 지름길'은 "학원이나 학교에서 학생들을 초급ㆍ중급ㆍ고급 등 큼지막한 분류로 나눠서 수업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영어를 아주 못하거나 아주 잘하지 않는 이상 자기 실력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데 넓디넓은 반들은 개인의 실력에 절대 맞춰줄 수 없다"는 설명이다.

   또 "단순나열식 영단어 책도 믿으면 안 된다. 억지로 외운 단어는 실생활에서 쓰려면 헷갈리고 대화할 때도 글쓸 때도 한국어 뜻만 생각하면서 쓰면 틀리는 경우가 많다"며 "미드나 영국영화를 보면서 단어를 익히고 영한사전 없이 다양한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김양은 어릴 때부터 영어일기를 써온 습관이 `영어 달인'이 되는 데 가장 결정적인 도움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일기를 썼다는 김양은 "일기는 배운 모든 것을 연습하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이런 경험이 밑바탕이 돼 지난해 'The World Scholar's Cup 대회'에서 대회 최초 만점으로 쓰기 부문 챔피언 상을 받았다.

 '세계적인 종교의 지정의 필요성'라는 에세이 주제를 받아든 김양은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을 숭배하는 가상의 종교 '스파게티교'를 예로 들면서 기존에 있었던 '피자교'와 '라비올리교' 등 다른 큰 종교의 반발과 무력 충돌을 묘사했다.

   말하기 대회에서도 '챔피언'이 된 경험이 있는 김양은 한국인들이 가장 두려움을 느끼는 '말하기'에 필요한 것으로 '시간'과 '용기'를 꼽았다.

   김양은 "발음은 별다른 비법도 공략방법도 없다. 귀에 많이 퍼부어야 입으로 나온다. 무조건 무식하게 입으로 많이 돌려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영어능력평가시험을 보는 족족 만점을 받은 김양은 "각 시험의 개성을 파악하는 것이 비법"이라며 "조금의 연습이 필요할 뿐이지 기본 실력과 요령을 알면 시험에서 고득점이 가능하다"고 귀띔했다.

   예컨대 김양에게 토플은 전형적이고 틀에 박힌 시험, 토익은 강한 집중력과 융통성이 필요한 시험, SSAT는 논리력과 경험이 필요한 시험이다. TEPS는 시간관념이 있어야 하는 시험, PELT는 쉽다고 생각하고 보는 게 좋은 시험, TESL는 세상에서 가장 착한 국가공인인증시험인 것이다.

   김양이 정의하는 영어는 `좋은 친구지만 나쁜 적'이다.

   김양은 "영어를 친구로 두면 여러모로 써먹을 데가 많은 '다용도 잭나이프'이지만 적으로서 영어는 방안에 숨어 있는 모기같다"며 "간신히 피해서 다시 안볼 줄 알고 방심하고 있으면 어디선가 날아와 간지러운 곳을 꽉 무는 존재이고 `왜 처음 제대로 잡지 그랬냐'는 것처럼 춤추면서 짜증 나게 하는 곤충같다"고 말했다.

   yjkim84@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1/09/29 09:42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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