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수석 합격생'들의 그 후(1)...    2006/04/12 21:39  추천 2    스크랩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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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만 끝내주게 좋아도 서울대에 합격할 수 있다' 또 '노력만 열심히 해도 서울대에 들어갈 수는 있다'

'그러나 머리만 좋은 것 가지고, 혹은 노력만으로 서울대 수석 입학이나 수석 졸업은 꿈꾸지 말라'

어떻습니까?  제가 생각해 낸 말입니다.^^

 

그 들어가기 어렵다는 서울대를... 그것도 거뜬히 1등으로 들어간 사람들이라면 비상한 두뇌에 공부에는 도가 튼 '공부벌레'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내노라하는 수재, 영재, 천재들 조차 언감생심 꿈조차 꾸기 어려운 게 '서울대 수석합격' 자리일 것입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해마다 서울대에 수석으로 합격하고 또 수석으로 졸업하곤 합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인생의 4분의 1을 공부와 학업성적에 골몰해야만 하는 대한민국에서 '서울대 수석'이라는 레테르를 달면 어느정도 장밋빛 인생이 보장될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이죠. 그렇다면 그 빛나는 '레테르'를 단 사람들의 그 후 인생역정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5년 전에 이에대한 연구 보고서가 한꼭지 나와 언론에 간략히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그 보고서에 의하면 당시 서울대 수석 입학자 23명을 분석한 결과, 수석 입학자 82%인 19명이 교수로 재직중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 중 절반인 9명이 모교인 서울대에서 교수로 재직중인 것으로 알려졌구요.

 

왜 아니겠어요?

송충이가 솔잎을 먹어야 하듯이 '공부벌레'들은 천직이 '공부(연구)'가 될 것임은 대강 예측이 가능하겠지요. 그에 비해 연세대, 고려대, 이대의 수석 입학자들은 상대적으로 회사원이나 사업체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얼마전부터 관심을 갖고 서울대 수석 입학자들이 현재 무슨 일을 하고 지내는 지 각론으로 파악해 보려고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1960년대부터 시작, 1986년까지의 서울대 수석 합격자라면 지금쯤 사회에서 뭔가 한자리씩 맡고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분들이 25만여명의 인물정보를 담고 있는 조선일보 인물정보를 비켜날 리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먼저 과거의 신문 지면을 통해 서울대 수석 합격자의 명단을 조사하여, 인물정보 수록인물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22명의 행방을 찾아보았습니다. 그 중에는 이미 세상을 뜬 분도 한 분 계셨고, 혹은 이민을 가셨거나, 결혼이나 기타 이유로 사회 활동을 접은 분도 계신 것 같습니다. 아무튼 명단을 입수한 서울대 수석 입학자 총 22명중 9명을 제외한 13명의 행적이 조선일보 인물정보를 통해 파악이 가능했습니다.  

 

1960년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에 수석 입학한 남수현씨, 부산고 졸업후 상과대 경제과에 입학한 허태홍씨(68학번), 서울고 출신 법과대 한석씨(69학번), 경기고 출신으로 물리학과에 진학한 강영석씨(73 학번), 서울 대신고 출신으로 자연계열 수석을 차지한 김대중씨(77학번), 같은해 대일고 출신의 인문계열 수석자 한문영씨(77학번), 장훈고 출신으로 서울대 전체수석인 김시홍씨(79학번), 충암고 졸업후 80년 자연계열에 수석 합격한 송홍식씨, 경성고 출신 이준걸씨(86학번)등 9인의 행방은 어인일인지 인물정보에서 찾아 낼 수 없었습니다. 

 

그외 현재민(64년), 김두철(66년), 김명수(67년), 임지순(70년), 오세정(71년), 한태숙(72년), 최종현(74년), 김승대(75년),한위수(76년, 인문계), 이동수(76년,자연계), 차국린(78년,자연계), 김동욱(78년, 인문계), 박병무(80년, 인문계)등의 수석 합격자의 경우는 수소문이 끝났습니다. 다음번 포스팅에서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블로그 글이 너무 길어지면 그것도 큰 실례라는 걸 잘 알기 때문입니다. ^^ 

(*서울대 수석 입학자는 물론이고 수석 졸업자, 대입 예비고사, 학력고사 수석자들까지 찾아낼 만한 '공부벌레'들은 모조리 찾아내 보려고 하는데 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서울대 '수석 합격생'들의 그 후(2)...    2006/04/16 21:43  추천 1    스크랩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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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짱', '시험짱' 하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들이 있죠.

서울대 수석 자리는 시간이 지나고 금방 잊혀졌지만, 언론을 통해 혹은 주변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공부 잘했고 정말 시험 잘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시 '3관왕'이 그들이죠.  

 

맨 먼저, 장덕진씨....
춘천고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1958년부터 3년간에 걸쳐 대한민국에서 최고 어렵다는 고시 3관왕(사법, 행정, 외무)을 최초로 모조리 휩쓴 입지전적 인물로 알려졌죠. 항간에는 대통령도 시험으로 뽑게되면 응당 이분이 차지할 것이라고 회자되곤 했었죠. 박정희 대통령 시절 농수산부 장관직까지 올랐고 현재는 대륙종합개발 회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고승덕 변호사.... 
전남 광주 출생으로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수석졸업하고 장덕진씨 이후 두번째로 고시 3관왕에 등극한 인물입니다.

이분의 이력을 보면 정말로 '불세출의 천재'라는 말이 절로 나오죠.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행시 수석합격, 사시 최연소합격, 그리고 외무고시까지 포함한 3관왕 등극...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어렵다는 시험을 거의 최고의 성적으로 거머쥔 독보적인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학창시절 하룻밤 사이에 명작소설 서너권을 읽어 제끼기도 했고, 도서관 가는 시간마저 아까워 집에서 공부할 정도였다고 하죠. 머리도 비상한데다 노력파의 전형임에 틀림없습니다. 얼마전 모 일간지 기자와 결혼 하여 화제가 됐었죠. 

 

장덕진.jpg   고승덕.jpg 

*고시 3관왕에 오른 장덕진/고승덕씨

 

이정우씨....
서울 법대 재학중 서울대 초대 총학생회장을 지냈고, '서울대 프락치 사건'에 연루되어 1년 6개월간의 복역생활도 하는 등, 열혈 386 운동권으로 이름이 알려졌었죠. 그러나 88년 복학과 함께 3년여간 고시에 파고들면서 장덕진, 고승덕씨에 이어 고시 3관왕을 차지한 입지전적 인물입니다. 386 젊은피들이 한창 주가를 올릴 때, 정치권에서 손길을 내밀어도 재야에 머물며 고집을 지켰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천재형들이 고집이 좀 쎄고 자존심 강한 측면이 있죠.
이 세분 이야 말로 진정 대한민국에서 '시험' 무서운 줄 모르고 살았던 분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그럼 이제부터 서울대 전체수석 합격생 열전으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읽기에는 좀 드라이 하더라도 서술 편의상 학번순으로 열거해 갈까 합니다.

 

먼저 서울대 전체수석 남수현.
경기고 출신에 1960년에 서울공대 화공과에 지망했습니다.

당시 만점 650점에 610점을 얻어 서울대 전체수석의 영광을 차지했죠. 경기고 출신으로 그해 서울 법대에 수석 합격(592점)하고 4년뒤 전체 수석으로 졸업한 강구진씨가(지난 84년 교통사고로 작고) 그의 고등학교-대학교 동기생였죠. 그해 입학정원 2천9백30명였던 서울대에 1만4천5백여명이 지원하여 경쟁률 4.8대 1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남수현씨가 지금 무엇을 하는지 인물정보 안테나에는 잡히질 않습니다.

 

1964년 전체수석의 영예는 공대 기계학과를 지망한 서울고 출신의 현재민씨 였습니다.
부친이 교수였던 현씨는 혜화국민학교와 서울중학교를 수석 졸업했고, 320점 만점에 290.3점으로 서울대 전체수석을 차지하죠. 그의 5남매 모두가 학교에서 1등을 휩쓸다시피하여 장안의 '수재 집안'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현재민씨는 그후 미 프린스턴대 석사, 럿거스(Rutgers)대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는 한국과학기술원 기계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불과 얼마전 부산상고 출신으로 한국은행 총재로 새로 임명된 이성태씨가 서울 상대에 수석 합격한 입학 동기생이고, 소광섭 서울대 물리학 교수는 문리대에 수석 합격한 동기생입니다. 

 

Noname111.jpg    현재민[1].jpg 

*64 서울대 전체수석 합격자 현재민 교수의 그때와 오늘. 

 

1966년 서울대 전체수석 김두철씨.
경기고 출신으로 서울공대 전자공학과에 지망했습니다.
앞서 현재민씨와 같이 교수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서울대 전체수석 답잖게 경기고 다닐때 한번도 우등생에 속해본 적이 없다고 하여 주목을 끌었죠. 본인도 서울대 전체수석이란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하고, 언론에서도 '이색 수재'란 평을 적기도 했죠. 500점 만점에 418점으로 1966년 서울대 전체수석의 영예를 차지했습니다.

미 존스홉킨스대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서울대 자연과학대 물리학부 교수로 재직중 입니다.
뒤에 보면 또 나오겠지만, 서울대 최고의 수재들이 물리학부 교수로 몰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해 문리대 수석 합격자 김희준씨는 현재 서울대 화학부 교수입니다.   

 

김.jpg   김두철.jpg 

* 66년 서울대 전체수석 김두철 교수의 그때와 오늘  


이듬해인 1967년.
전체수석은 역시 경기고 졸업후 서울대 화학과에 지망한 김명수씨 입니다.

서울대를 졸업후, 미 시카고대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서울대 자연과학부 화학과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김명수씨는 4년뒤 1971년에는 서울대 문리대를 수석 졸업, 수석입학-수석졸업의 2관왕을 함께 거머쥐죠. 현재 대통령 경제비서관인 정문수씨가 그해 서울법대 수석합격(416점) 동기생 입니다. 또 그해 공대(화공과)에 수석 합격자는 BOE-하이디스테크놀로지 사장 최병두씨 였구요. 

 

김명수.jpg   정.jpg 

*67년 전체수석 김명수 교수 / 그해 법대 수석합격자 정문수 비서관

 

1968년 서울대 전체 수석은 상대 경제과에 지원한 당시 24살의 만학도 허태홍(1944년)씨 였습니다. 
부산고 출신으로 5백점 만점에 438점으로 전체수석을 차지합니다. 이 분은 서울대와 좀 복잡한 인연끝에 서울대 전체수석을 차지한 경우였죠. 62년도에 서울대 전기과에 원서를 냈다가 아예 시험을 포기했고, 이듬해 공대 기계과에 응시하여 보기좋게 낙방하고, 64년에 기계과에 재도전하여 합격했으나 적성과 맞지 않는다고 1년만에 중도 포기 했습니다. 그리고 3년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푼돈 좀 벌다가 20대 중반의 만학도로서 재도전 하여 서울대 전체수석을 차지했던 것입니다. 현 부산지법 박용수 법원장이 그해 435점으로 법대 수석을 차지한 그의 입학 동기생 입니다. 인물정보에 수록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69년 서울대 전체수석 한석씨(서울고-법과대, 406점)가 차지했는데, 이분 역시 인물정보에 잡히지 않아 무엇을 하는지는 파악할 수 없었으나, 그후 동기생이신 아주대 박승규 교수님께서 정보를 제공해 주셨습니다. 안타까운 내용이지만 뒤늦게나마 추가토록 하겠습니다.

한석군은 한글 이름을 딴 별명 '한 돌(Ein Stein)'로 불리며 머리 좋은 아인쉬타인(Einstein) 이라고 들었던 것 같습니다. 69년도에 수석 입학 후, 법대를 졸업하고 당시 (주)대우에서 임원으로 근무중, 중동에서 마유미의  KAL 폭발 사건으로 추락하는 사건에 희생이 되어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울대 수석 입학생의 영재로서 흔히, 법조계나 학계가 아니라, 산업역군으로 참여 기여하다가 희생을 한, 한 석 군에게 조의를 다시 표합니다.  -동기생 박승규님-

참고로 덧붙이자면 당시에는 서울대 합격선을 공개할 수 없도록 되어있는데, 조선일보 취재진이 입수한 바로는 1969년 서울대 합격 커트라인은 500점 만점에 법학과(333점), 정치학과(325점), 행정학과(320점), 불문과(317점), 외교학과(315점), 영문과(310점), 사회학과(306점) 순였다고 하네요.

 

허태홍(1968).jpg     한석(1969년).jpg  

*68년 전체 수석 허태홍씨/69년 전체 수석 한석씨. 

 

다시한번 되뇌이지만 공부 잘하는 사람들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 하나씩은 있는 것 같습니다.
꼭 '군계일학'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일단 공부좀 한다하는 인물이라면 두뇌가 특별히 좋거나, 의지가 강하다거나, 엄청난 노력형 성실파 였다거나 한 것은 사실 같아요. 그래서 꼭 '학빨'이 아니더라도, 사회에 진출했을때 그들이 성공할 확율이 그만큼 높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글이 길어졌으니 1970년대 서울대 전체 수석합격자는 다음으로 넘깁니다.

 

 

서울대 '수석 합격생'들의 그 후(3)...    2006/04/22 22:26  추천 2    스크랩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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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도 '천재급' 혹은 '수재급'하면 떠오르는 사람들이 몇 있죠.

얼른 스쳐가는 대표적 인물이 원희룡과 천정배.
바다 건너 제주 출신으로 1982년 대입학력고사 전국수석과 서울대 수석, 92년 사법시험을 수석으로 합격한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은 누가 뭐래도 공부 잘하던 '수재' 정치인이라 할 수 있죠.  40대 초반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한나라당 최고위원직까지 올라서 있습니다.        

 

또 목포가 낳은 '3대 천재'로 통하며 72년도 예비고사 전국 차석, 서울법대 수석입학, 사법연수원을 3등으로 졸업한 천정배 법무장관도 공부에 관한한 둘째 가라면 서러울 만큼 비상한 두뇌로 공부 잘했던 울트라 우등생 였다고 하죠. 말하는 것을 보면 '샤프'하다는 느낌은 좀 덜하지만, 아무튼 호남이 자랑하는 천재라 하니 공부하나는 흠잡을 수 없을만치 잘했나 봅니다. 이들이 정치에 입문할 때, 이들에게 남은 것은 오직 '정치 1등'만 남았다는 얘기가 오가기도 했었죠.      

그밖에 경기고와 서울상대를 졸업하고 고시 양과(사법,행정)에 합격하고 공인회계사에도 합격한 박찬종 한나라당 상임고문도 시험 잘 쳤던 정치인으로 회자되던 인물로 알려지곤 했죠.  

  

원희룡[1].jpg 천정배.jpg 박찬종.jpg *

  *원희룡/ 천정배/ 박찬종씨

 

그럼 60년대에 이어, 1970년대 서울대 전체수석자 열전을 계속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1970년대 대학 수험생이라하면 대부분 한국전 이후에 출생한 '전후세대'들입니다. 1950년대에 태어나 개발년대인 70년대에 대학을 다녔고, 지금은 대부분 40대 후반, 혹은 50대를 살아가는 분들이 이들 세대에 해당되겠죠. 한국의 베이비부머 초창기 세대로서 이들이 대학 들어갈 때 그만큼 입시 경쟁율도 극심했을 겝니다. 흔히 말하는 475 혹은 575세대로 불리우는 세대이기도 하구요.    

 

1970년 원년.
그해 서울대 전체수석 합격자는 경기고 출신의 임지순씨.

이분은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을 만큼 언론을 통해서도 너무 잘 알려진 인물이죠. 차세대 경제성장의 동력인 탄소나노튜브 연구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자로 잘 알려졌고 굵직한 상도 여러번 받았죠. 국내학자로서는 노벨상에 가장 가까이 간 분으로 얘기되기도 했었습니다. 70년 당시 평균 91.3점으로 예비고사 전국 최고득점을 차지했고 서울대 입시에서는 6개과목 5백50점 만점에 4백10점으로 전체수석을 차지했지요. 서울사대부국과 경기중-경기고에서도 줄곧 수석만을 차지했던 자타공인의 수재였습니다. '크게 될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란 말을 시험 성적으로 입증해온 산증인였던 셈이죠. 미 버클리대에서 물리학 석사-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서울대 자연과학대 물리학과 교수로 계십니다.

경복고 출신으로 상대 경영학과에 수석합격한 CJ푸드시스템 이창근 공동대표, 중앙고 졸업후 서울공대 전자공학과에 수석합격한 전 팬택&큐리텔 송문섭 사장이 수석합격 동기생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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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지순(70년 전체수석)/ 이창근/ 송문섭씨  

 

1971년 서울대 전체수석 오세정씨. 이분이 걸어온 길은 임지순씨와 영락없이 닮은 꼴입니다.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문리대 물리학과에 진학하게 되죠. 임지순씨와 마찬가지로 대입예비고사에서도 전국 최고득점을 차지 했으며 경기고 이과를 1등으로 졸업한 수재중의 수재였다죠. 5백80점 만점에 4백78점을 얻어 평균 82점으로 71년도 서울대 전체수석을 차지하게 됩니다.

같은 경기고 출신으로 현재 제주지법 법원장으로 있는 이호원씨가 당시 법대 수석, 인하대 경상대 경제통상학부 윤진호 교수가 그 해 상대를 수석 합격한 입학동기생 입니다. 오세정 교수는 미 스탠포드대에서 물리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임지순씨와 함께 서울대 물리학부 교수직에 몸담고 있습니다. 

   

오세정p.jpg 오세정.jpg 이호원.jpg 윤진호.jpg 

*오세정(71년 전체수석)/ 이호원/ 윤진호씨


1972년 서울대 전체수석 한태숙씨. 이분도 대단한 내공을 자랑하는 분입니다. 
그 해 경기고 수석졸업에, 대학예비고사 전국수석. 서울대 전체수석등 3관왕을 모두 차지했죠. 

5백80점 만점에 4백47점을 얻어 평균 77점으로 서울공대 전자공학과로 진학했습니다.   
집안 형제들 모두가 1등만 차지하는 '수석집안'으로도 유명했죠. 당시 한태숙씨 수석소감을 보면 보면 경기고 선배인 임지순, 오세정씨를 따라 서울대 물리학과로 지망할까 하다가 그쪽에는 쟁쟁한 선배들에게 이미 자리잡고 있으니 자신은 응용과학인 전자공학과에 진학하여 그쪽 분야에서 뜻을 펴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한국과학기술원 석사, 미 노쓰 캐롤라이나 대학에서 박사학위 취득후, 현재 한국과학기술원 전자전산과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70년대 들어 내리 3년간 경기고 출신이 전국 예비고사 톱과 서울대 전체수석을 모조리 휩쓸고 있습니다. 

  

한태숙p.jpg  한태숙.jpg *한태숙씨(72년 전체수석)

 

1973년도 역시 경기고를 졸업한 강영석씨가 서울대 전체수석을 차지 했습니다.  
5백80점 만점에 4백65점. 드믈게 수학에서는 만점을 받았습니다.

강씨 또한 앞서 임지순씨나 오세정씨처럼 서울대 문리대 물리학과 지망했습니다. 이분은 인물정보에 수록되지 않아 그 근황을 알 수가 없었는데, 때마침 이곳 블로거(박정수씨)중 한 분이 그분의 소식을 남겨 주셨기에 그것으로 근황을 대신 하겠습니다. 당시 풍한산업 전무였던 강신섭씨의 3남 1녀중 막내둥이였습니다.
-서울대 수석합격자 얘기중 인물사전에 올라 있지 않다고 한 강영석씨(물리학과 73학번)의 소식을 알고 있어 오현기씨에게 알려 드리려고 합니다. 강씨는 서울대 재학중 도미하여 UC Berkeley 에서 물리학박사를 받고 이어 Yale 대학 Medical School을 졸업하고 지금 미국 Palo Alto(California) 에서 방사선 전문 의사로 살고 있습니다. 유명한 violinist 강동석씨가 그의 형입니다.-  

 

1974년. 육여사가 서거한 해였죠.

그해 서울대 수석합격자는 충청도 출신으로 서울중-서울고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사회계열로 진학한 최종현씨 였습니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도서관과 집만을 오가며 독학하다시피 공부하여 6백15점 만점에 4백89점으로 서울대 전체수석을 차지했죠. 미시건대 로스쿨을 졸업후, 서울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상법)를 취득했습니다.

최씨는 수석 소감에서 사회정의를 바로잡는 법관이 되겠다고 장래 포부를 밝히기도 했는데, 1979년 사법고시 합격후, 1984년 변호사 개업(서울),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를 거쳐, 현재는 법무법인 세경 대표변호사를 역임중 입니다. 그해 자연계열에 수석합격한 전주고 출신의 채수찬의원(열린우리당)이 그의 동기생 입니다.

                 

최종현p.jpg 최종현.jpg  채수찬.jpg             김승대p.jpg 김승대.jpg 이명식.jpg

*최종현(74년 전체수석)         *채수찬씨                *김승대(75년 전체수석)         *이명식씨   

 

1975년 서울대 수석합격자는 사회계열에 지원한 경남고의 김승대씨. 
6백48점 만점에 5백46점을 얻어 서울대 전체수석을 차지합니다. 81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부산지검 검사, 서울고검 검사, 서울지검 남부지청 부장검사를 거쳐, 현재 부산대 법과대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과정을 이수하였습니다. 삼성의료원 내분비대사과 의사이자 성균관 의대 이명식 교수가 그해 의예과에 수석 합격한 동기생 입니다.


참고로 1975년 서울대 모집계열별 합격 커트라인은 648점 만점에 사회계열(407점), 자연계열(373.6점), 인문계열(399.8점), 가정계열(342점), 교육계열(인문, 380.2), 교육계열(자연,356.8점), 농학계열(340점), 의예과(377.2점), 치의예과(370점), 수의예과(312점), 농가정학과(321.2점), 간호학과(323.8점)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서울대 '수석 합격생'들의 그 후(끝)...    2006/04/30 00:43  추천 2    스크랩  15 
 
http://blog.chosun.com/hkoh/1086248    
 
'뺑뺑이'로 불리우던 고교 평준화제도는 1974년 서울과 부산에서 처음으로 도입되게 됩니다. 
당시 표면적 명분은 암기식-주입식 고교 교육의 폐단을 정상화하여 입시과열을 해소하고 고교간 학력차와 명문고의 집중현상을 막아보자는 취지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고교 진학을 앞둔 대통령의 영식 박지만씨를 염두하여 평준화제도가 도입됐다는 말이 '정설'처럼 알려지고 있지요. 박지만씨는 74년 그 해 '뺑뺑이'로 중앙고에 진학하게 됩니다.  

 

평준화 제도는 서울-부산에 이어, 그 이듬해인 75년 대구-인천-광주로, 그리고 79년에는 대전-전주-마산-청주-춘천-제주-수원 등 전국 대도시 대부분으로 확대됩니다. 주지하듯 1975년까지는 서울대 전체수석 합격자 대부분이 경기고, 서울고 등 서울의 전통 명문고생 '판'이었던 반면, 첫 평준화 세대가 시험을 치루는 77년도 부터는 서울 명문고 '싹쓸이 현상'이 사그라들게 됩니다.

  

그럼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1970년대 후반기 서울대 전체수석 열전을 계속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지난번 포스팅에 관심이 별로 없었더라면 나머지는 그 포스팅에 덧붙여 정리해 놓으려고 생각 했드랬는데, 지난번 내용에 무려 연인원 1만 3천여명('제블' 신기록^^)이 넘는 분들께서 방문하여 제게 즐거움을 주셨기에 별도의 포스팅으로 한번 더 올려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지난번 방문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70년대 후반 서울대 전체수석자 열전을 마저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체적으로 1956년생부터 1960년생들이 여기 해당될 것입니다.

    

76학년도 서울대 전체수석 합격자는 인문사회계열에 지원한 경북고생 한위수씨 였습니다.
대구 출생의 한위수씨는 단칸 셋방의 어려운 가정형편에 스스로 학비를 벌며 공부하여 고교 3년간 1등을 독차지한 수재로 알려졌습니다. 682점 만점에 577점으로 서울대 전체수석의 영예를 안게 됩니다. 한위수씨는 그후 서울대와 미 펜실베니아대 석사학위를 수료하고 부산고법과 서울고법 판사를 거쳐, 현재는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또 그 해 자연계열 수석합격자로 의예과를 지망한 이동수씨(경기고, 562.5점)는 서울 의대에서 석사, 박사학위 수료 후, 현재 서울대 의과대 핵의학교실 교수로 있습니다. 
아주대 경영학부 구형건 교수(경남고)가 자연대 이공대에 수석합격한 동기생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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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위수 서울고법 부장판사    /이동수 서울의대 교수           /구형건 아주대 교수

 
이듬해인 1977년.
자연계열의 김대중(만점 566점중 494.4점)씨와 인문사회계열 한문영씨(485점)가 서울대 계열별 수석을 차지합니다. 자연계열 수석 김대중씨는 서울 대신고를 수석으로 입학하여 수석으로 졸업하고, 고교 재학중에는 전국수학경연대회에서도 1등을 차지한 수재 였습니다. 수석 소감을 통해 서울대 의예과에 지망하여 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던 바,  서울대 석-박사 과정을 거쳐, 현재 삼성 서울병원 심장내과 과장, 성균관대 의대 교수직에 있습니다. 
서울 대일고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인문사회계열에 수석으로 합격한 한문영씨는 전편에서 소개드렸던 한태숙씨(72년 서울대 전체수석 합격)의 동생으로 '수재집안' 답게 5년 간격으로 형과 동생이 서울대 전체수석의 영광을 차지한 드믄 케이스 입니다. '가문의 영광'이 바로 이런 경우 겠지요.
한문영씨는 법대를 지망하여 법관이 되겠다고 밝혔으나 인물정보에 수록되지 않아 근황을 알 수 없었으나, 그후 임경윤님께서 근황을 전달해 주셨기에 추가하겠습니다.

77학번의 한문영은 23회 사법시험 합격 후 연수원 13기로 수료하였고, 미국 유학후 미국변호사자격도 취득하여 그곳 로펌에 있다가 최근에 김앤장으로 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임경윤님 제보- 

강범모(제물포고) 고려대 언어과학과 교수, 이광수(계성고) 숙명여대 정보과학부 컴퓨터과학전공 교수 등이 그 해 서울대 단과대별 수석 합격생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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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영군과 김대중군                    /김대중 교수    /강범모 교수   /이광수 교수    

    

(*당시 신문표기에는 왼쪽이 한문영군, 오른쪽이 김대중군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김대중 교수의 지금 사진과 비교해보면 당시 신문의 이름 표기가 뒤바뀐 것으로 생각됨)  

      
78년 서울대 전체수석은 성동고를 졸업하고 자연계열 이공계에 지망한 차국린씨(566점 만점에 490점)와 인문사회계열에 수석합격한 대구 계성고의 김동욱씨(488.6점)였습니다. 차국린씨는 미 캘리포니아대 물리학 석사, 스탠포드대 물리학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현재 서울대 자연과학부 물리학부 교수로 있습니다. 그의 한살 터울의 형 차국헌씨 또한 서울대 공과대 응용화학부 교수로 형제가 서울대 교수로 재직중 입니다.

인문사회계열 수석합격자 김동욱씨는 서울대 행정학 석사, 미 오하이오 주립대 행정학 박사후, 현재는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과 부교수로 있습니다. 

        

차국린피.jpg 차국린.jpg    김동욱피.jpg   김동욱.jpg 

/차국린 서울대 물리학부 교수          /김동욱 서울대 행정학과 교수

 

 

문제의 1979년. 궁정동에서 총성이 울렸던 그 해 입니다.
79년 입시에서는 고교 평준화 지역과 비평준화 지역간 합격차가 크게 벌어져 주목을 받았습니다.
비평준화 지역의 지방 명문고인 전주고, 대전고, 마산고, 진주고, 춘천고 등이 서울의 전통 명문고를 제치고 압도적으로 많은 서울대 합격자를 내는 현상이 두드러졌던 것이지요. 평준화 지역 서울의 경우 서라벌고가 92명지원에 47명이 합격자를 배출하여 최다 합격자를 배출했고, 중동고 43명, 대성고 39명, 명지고 30명, 마포고 28명, 경동고 25명, 경신고 27명, 대광고가 14명으로 50명을 채 넘기지 못했습니다. 반면 비평준화의 지방 명문고는 전주고 157명, 마산고 107명, 대전고 102명등 1백명 이상의 합격생을 배출하여 지방 명문고가 초강세를 드러낸 특징을 보였던 해입니다.  

 

1979년 서울대 전체수석은 650점 만점에 583점을 얻은 김시홍씨 였습니다.
중대부속국민학교-중대부중-장훈고에서 한번도 1등을 놓치지 않은 수재로서, 예비고사에서는 2점이 모자라 아깝게 전국수석을 놓쳤다고 합니다. 물리학을 전공하여 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으나, 이분 또한 인물정보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아 그 꿈을 실현했는지 확인하기 어려웠습니다. 
유치원때부터 한글을 익혀 많은 동화집을 읽었고(그땐 이런것도 뉴스밸류?), 국민학교 때는 중학생 누나의 틀린 한자를 고쳐줄 만큼 머리가 뛰어나 동네 어른들을 놀래켰다고 합니다. 

광성고 출신 김시현 변호사(법대 수석), 대성고를 졸업한 정웅 동국대 반도체과학 교수(공대 수석), 홍대부고 출신의 김호중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 과장(의대 수석), 황익주 서울대 사회과학대 인류학과 부교수(사회대 수석)등이 그의 수석 동기생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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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년 전체수석 김시홍씨   /김시현 변호사, 정웅 교수, 김호중 교수, 황익주 교수

 


뒤숭숭하던 1980년도 팔공학번. 신입생으로 '서울의 봄'을 캠퍼스에서 맞은 세대입니다. 
그 해 서울대 자연계열 수석합격은 송홍식씨.
서울 상대 출신의 공인회계사 송성순씨의 2남 1녀중 2남으로 태어나 청운중과 충암고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684점 만점에 580.3점을 받아 자연계열 수석을 차지했습니다. 이 분 역시 역시 인물정보에 수록되지 않아 근황을 파악하기 어려웠습니다.

80년 서울대 인문사회계열 수석합격자 박병무씨.
대일고를 졸업하고 650점 만점에 557점(예시 330점 포함)을 받아 인문계열 수석으로 법과대에 진학하였습니다. 
수석 소감에서 '유능하고 진보적인 법관'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던 바, 대학 재학중에 제24회 사법시험에 최연소 합격, 서울 법대 수석졸업,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로커스홀딩스와 플레너스엔터테인먼트 사장직을 거쳐 지금은 뉴브릿지 캐피털코리아와 하나로텔레콤 대표이사 사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이 분 또한 국민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단 한번도 1등을 놓치지 않은 수재중의 수재였다고 합니다. 19세의 나이에 '진보적인 법관'이 되겠다고 밝힌 점이 매우 이채롭습니다. 

        

송홍식피.jpg 박병무피.jpg  박병무.jpg   이선민.jpg 

/송홍식(좌측)과 박병무(우측)      /박병무사장  /이선민 기자

 

80년도에도 입시에서도 비평준화 지방 명문고의 초강세가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특수지 학교로 지정돼 비평준화고로 남았던 서울 우신고가 160명, 전주고 155명, 대전고 131명, 마산고 109명의 합격자를 배출, 비평준화 지역의 명문고가 100명 이상의 합격자를 냈습니다.
반면 평준화 지역인 서울에서는 서울고(59명), 서라벌고(53명)만이 50여명을 넘었을뿐, 대일고(49명), 보성고(43명)등이 40명을 넘기는 선에 그쳐, 청주고(60명), 춘천고(65명)보다도 적었습니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80년 그 해 수험생중 조선일보 현직기자 중에도 수석 합격생이 한 분 계십니다.
숭문고를 졸업하고 그해 서울대 인문계열 인문대에 수석을 차지한 이선민(550점 득점) 문화부 차장이 그 주인공.

현재 조선일보 문화면 Books섹션 편집장을 맡아, 매주 토요일자 '편집자 레터'를 고정 집필하고 있습니다. 서울대 국사학과에 진학하여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사내에서는 학구파형 '선비기자'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이쯤에서 서울대 전체수석자 열전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아무튼 서울대 전체수석자 자료를 정리하면서 느낀 것은 ''수재 집안'의 내력은 분명 있다'라는 점과, 또 그들의 천재성은 어릴때 부터 뭔가 다른 '싹수'를 보이는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인생에서 '부와 명예'가 전부가 아니듯, '공부 혹은 성적' 또한 인생의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평생을 치열한 경쟁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네 사회에서, '공부 혹은 성적'은 주요한 개인의 경쟁력이며 '성공으로 가는 길'의 '보조 열쇠' 정도는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네요. 세상이 다원화되고 시대가 빠르게 바뀌고는 있습니다만....

 

P.S)포스팅 후 추가 제보내용
### '69년 서울대 전체수석 한석군은 한글 이름을 딴 별명 '한 돌(Ein Stein)'로 불리며 머리 좋은 아인쉬타인(Einstein)이라고 들었던 것 같습니다. 69년도에 수석 입학 후, 법대를 졸업하고 당시 (주)대우에서 임원으로 근무중, 중동에서 마유미의 KAL 폭발사건으로 추락하는 사건에 희생되어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울대 수석 입학생의 영재로서 흔히, 법조계나 학계가 아니라, 산업역군으로 참여 기여하다가 희생을 한, 한 석 군에게 조의를 다시 표합니다. 아마, 상세 정보는 서울고21회 동기회로 부터 알 수 있으리라 생각됨 (저는 이과생이라 문과생들이 더 상세한 정보를 알고 있으리라 추정)                
                                                                                                                       -동기생 박승규님 제보-

### 77학번의 한문영은 23회 사법시험 합격 후 연수원 13기로 수료하였고, 미국 유학후 미국변호사자격도 취득하여 그곳 로펌에 있다가 최근에 김앤장으로 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임경윤님 제보-


### 수석합격자 얘기중 인물사전에 올라 있지 않다고 한 강영석씨(물리학과 73학번)의 소식을 알고 있어 오현기씨에게 알려 드리려고 합니다. 강씨는 서울대 재학중 도미하여 UC Berkeley 에서 물리학 박사를 받고 이어 Yale 대학 Medical School 을 졸업하고 지금 미국 Palo Alto(California) 에서 방사선 전문 의사로 살고 있습니다. 유명한 violinist 강동석씨가 그의 형입니다.
                                                                                                                       - 박정수님 제공-
 세분께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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