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담]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장승수(서울대 인문수석, 사법고시합격
글쓴이 :  작은아이 날짜 : 2006-11-03 (금) 15:23 조회 : 9265
글주소 : http://umz.kr/0AT9U

 


  책의 개관
이 책의 저자인 장승수 씨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술집으로 당구장으로 돌아다니면 싸움꾼 고교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고등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그는 포크레인 조수, 오락실, 가스·물수건 배달, 택시 기사, 공사장 막노동꾼 등 여러 개의 직업을 전전하면서 스무 살 때 찾아온 공부에 대한 열정으로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 노릇과 뒤늦게 대학문을 두드리는 늦깍이 수험생 노릇을 함께 하면서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서울대 정치학과, 서울대 법학과 등에 지원했다가 떨어졌지만, 고교 졸업 6년 만인 올해 대학 입시에서, 난생 처음 1등을 하며 서울대 인문 계열에 수석 합격한 의지의 인간입니다.
이처럼 이 책은 키 160센티에 몸무게 52킬로그램의 왜소한 체격과, IQ 113에 내신 5등급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조건으로, 모든 불리한 환경을 의지로 극복하고, 잘 하는게 없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장승수 씨의 일과 공부에 대한 감동적인 인간 드라마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책의 본격적인 내용 




 막노동꾼에서 서울대 수석까지



이 책의 제 1부에서는 '막노동에서 서울대 수석까지'라는 소제목으로 장승수 씨의 고등 학교 시절에서 대학 합격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장승수 씨는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아주 평범한 중학교 생활과 문제아로서의 고등 학교 생활을 마치고, 국비 직업훈련원에 들어가, 반 또래들이 한창 입시에 촉각을 세우고 있던 90년 1월, 대학 입시 대신 포크레인과 지게차 실기 시험에 도전했지만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학원측에서 마련해 준 포크레인 조수일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생활 전선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그후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면서 방탕한 생활을 거듭하던 91년 어느 밤에 술을 마시고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길가에 쳐박고 말았습니다. 한쪽 다리가 쓰러진 오토바이에 짓눌리고 있다는 느낌과 함께 정신을 잃어버렸는데, 눈을 떠보니 종합병원 응급실이었습니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화난 표정을 한 의사가 다가오더니, 대뜸 병원 응급실은 술 취해서 잠자는 곳이 아니라며 쫓아내 버립니다. 그래서 주저 앉아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그 때 왜 눈물을 흘렀는지 잘 모르겠다고 이야기 하고 있지만, 장승수 씨에게는 자신의 세상 살이가 비겁하다는 느낌과 함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막연하게나마 다가온 최초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평생을 이런 식으로 살아갈 자신이 서질 얺았고, 지금이야 몸이라도 젊지만, 언제까지 이런 일을 계속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언감생신 꿈조차 꾸지 않았던 '대학'이라는 곳이, 갑자기 자기에게 남겨진 유일한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꼭 1년 만인 1992년 2월 초, 장승수는 대입 종합반 '반 편성 시험'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장승수 씨의 대학 진학을 위한 공부는 시작되었습니다. 이 시절 하루의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을 공부만 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리고 밤 10시 야간 자습니 끝나고 아이들이 다들 집으로 돌아간 후에도 공부를 하다가 현관으로 내려가 보면 학원문이 잠겨져 있었고, 수위 아저씨에게 야단을 맞으며 문을 열어 달라고 해서야 학원 밖으로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던 공부에 어떻게 그처럼 매달릴 수 있었는가를 생각해 보면, 이유는 간단하다.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공부는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내 인생의 물줄기를 바꾸기 위해 내가 선택한 마지막 대안이었다. 그리고 고교시절 학생이라는 본분을 벗어나 방탕의 극치로 세월을 보냈던 경험이 나를 두럽게 했다. 한 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벗어나기 시작하면 잘수록 그 정도가 심해져 결국에는 도저히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만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 시작할 때부터 한 치의 틈도 허락해서는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았던 것이다. 기초실력이 없으니 해야 할 공부는 산더미 같았다. 학원수업과는 별도로 국영수 전 범위를 나 혼자 따로 공부해야 했다. 그저 전혀 몰랐던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알아 가는 전혀 새로운 경험에 빠져 들었다. 공부는 의외로 재미있었다. 알아 간다는 것이 이토록 참을 수 없는 기쁨을 줄지는 몰랐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된 공부는 장승수 씨에게 기쁨만을 가져다 주지는 않았습니다. 공부를 시작하던 첫 해 고려대를 진학하여 불합격하였고, 입시 공부 한답시고 돈을 벌지 않아 가정 형편은 말이 아니었으며, 어머니의 건강은 극도로 악화되었고, 고려대에 합격한 동생은 등록금이 없어 입학하자마자 휴학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장승수 씨는 공부를 잠시 멈추고 막노동 일자리 찾아가 노가다를 하게 됩니다. 장승수 씨가 일한 공사장은 울산의 온천 개발 현장이었는데, 장승수 씨는 공사판이라고는 난생 처음인 내게 이런 요령이 있을 리 없었고, 힘이 부치다 보니 시간도 사람도 미치도록 더디게 가는 것 같았다. 아직 한겨울인데도 땀을 콩죽처럼 흘리며 일을 할 때, 머리 속에는 어서 쉬는 시간 밥 먹는 시간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한참을 일했다 싶어 이제쯤 쉬는 시간이 다되어 가겠거니 하고 시계를 보면, 황당하게도 겨우 5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이 끝나면 벌써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저녁을 먹고, 그런 다음에는 합판때기로 엉성하게 지어 놓은 가건물에서 바닥에 깔린 두툼한 스티로폼 위에 전기장판을 한 장 깔고, 싸구려 이불 한 채를 덮고 누우면 바람소리 사이 사이로 새 소리가 들려 왔고, 밀려드는 피로와 잠 때문에 어머니 생각 한 번 해볼 겨를조차 없이 곯아 떨어지곤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해 4월 까지 일을 해서 일단 급한 불을 끄고, 5월에 다시 학원으로 돌아가서 이제는 서울대를 목표로 열심히 공부했으나 내신 5등급이라는 점수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서울대에 불합격하게 됩니다. 이번에는 불합격 소식을 듣자마자 아예 일부터 해서 돈을 좀 모으고 나서 다시 한 번 도전하기로 마음을 굳혀 먹은 장승수 씨는 노가다 일을 5월 까지 하다가, 6월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 대학 입시 제도가 학력 고사에서 수학 능력 시험으로 바뀌어 더욱 난감했습니다. 설상 가상으로 학력고사 때는 시험 과목이 아니던 지구과학, 물리, 화학, 세계사 등 네 과목이 추가 되어 있었고, 시험 유형 또한 학력 고사와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그러면서도 막연히 잘 될 거라는 착각에 사로잡혀 서울대 법대에 지원했고, 결국 또 한 번의 참담한 실패를 경험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장승수 씨에게도 행운은 찾아왔습니다. 94년도부터 고교 졸업 후 5년이 넘은 학생에게는 희망자에 한해서 고등학교 내신 등급 대신 수학 능력 시험 성적에 따라 새로운 내신을 받을 수 있다는 규정이 새로 생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1년 동안 막노동을 하여 돈을 조금 비축한 다음 95년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95년에 공부를 하면서 가장 주의를 기울인 점은 모든 과목에 걸쳐서 사소해 보이는 단어 하나 개념 하나까지도 완전히 그 의미를 파악하고 또 이를 암기하고자 노력한 점이었다. 마음 속으로 정한 목표 점수는 200점 만점의 수능 시험에서 190점 이상을 받는 것이었다.
'결전'의 날은 다가왔고, 수능 시험을 치르고 난 장승수 씨는 뜻밖의 저조한 점수에 실망했지만 점수는 의외로 높게 나와 서울대를 응시하게 되었고, 본고사까지 치르고 대구로 내려와 오랜만에 친구들도 만나고 하면서 사나흘을 푹 쉬었다. 그러다 보니 '놀면 뭐하나, 돈이 나 벌어야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같이 일하던 아저씨들게 연락을 해보니, 마침 일거리가 있다고 해서 1년여만에 다시 공사현장으로 돌아온 것이다. 아저씨들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그런데 공사장 아저씨들은 1년 동안 공부를 하여 대학 입시를 치르고 왔다는 장승수 씨의 말을 믿지 않았으나, 고려대에 먼저 합격한 사실을 알고 기뻐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장승수 씨의 기대는 서울대였습니다. 하루 하루 서울대 발표날이 다가오고, 합격할 자신은 있었지만, 정작 발표날이 다가오자 또다시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떨어진다면 이제는 다 때려치우고 평생 노가다나 하면서 살아가야 할 자신의 인생이 막막할 뿐이었습니다.



이윽고 발표날이 되었는데, 여기서부터는 직접 책에 쓰여진 내용을 직접 인용하여 읽어가는 것이 훨씬 감동적일 것 같아서 직접 한 번 읽어나가겠습니다.
서울대 합격자 발표를 하던 날 초조함과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어머니는 벌써 기도를 하러 새벽같이 산으로 올라가셨고, 나는 고민에 빠졌다.
그래, 나가자. 나가서 잊어 버리고 노동판에서 일이나 하자. 그리고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건설 회사 직원 한 사람이 나의 이름을 불렀다.
"장승수씨, 빨리 현장 사무실로 가 보세요."
무심코 사무실을 향해 걸어가는데, 이번에는 등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승수야!"
뒤를 돌아보았다. 우리 아저씨들 중에서 유일하게 호출기를 가지고 있던 김씨 아저씨가 헐레벌떡 나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승수야, 니 서울대 수석 합격했단다!"
글쎄, 이 순간에도 그저 담담하게 한 번 씩 웃어 버리고 말면 얼마나 멋있어 보였을까. 하지만 나는 역시 그런 위인은 못 되는 모양이다. 진짜 좋아서 죽을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내 정신이 아니었다.
미친 사람처럼 아저씨들을 껴안고 길길이 뛰다가, 문득 어머니 생각이 났다. 이런날 버스를 두 번씩 갈아 타고 집까지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아저씨한테 만 원짜리 한 장을 얻어서는 현장을 뛰쳐나왔다. 택시가 우리집 근처에 다다르자 평소와는 달리 좁은 골목길에 차들이 북적대는 것이 보였다. 순간적으로 엉뚱하게도 우리집 근처에서 무슨 사고가 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집 앞에 서 있는 차들이 모두 방송국과 신문사 위재 차량이었다. 그제서야 '사고'의 주인공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문을 들어서니, 집안은 이미 북새통이 되어 있었다. 어머니를 애워싸고 있던 기자들이 "장승수 씨 맞지요?" 하면서 나를 향해 덤벼 들었다.
다음날, 전국의 모든 신문과 방송이 나의 얘기를 실었다.
"막노동 4수생, 서울대 수석 합격!"
"가난도 시련도 뛰어넘은 인간 승리의 산 표본!"
"막노동판에서 일군 영광!"
이라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리고, 막노동꾼 출신 장승수 씨는 서울대 수석 합격의 영광을 안게되었습니다.


 


 공부가 가장 쉬웠다는 장승수식 학습법
이 책의 제 3부에서는 공부가 가장 쉬웠다는 장승수식 학습법이 소개되어 있고, 요즘 많은 수험생들 사이에서 이 학습법이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시간 관계상 많은 이야기는 할 수 없고 간단히 소개하자면,



첫째, 자신의 공부 방법에 개방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자신이 하고 있는 방법이 좋지 않은 방법일 수도 있으며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새로운 방법이 더 좋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언제든지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면 새로운 방식, 남의 방식을 받아들일 수가 있어야 한다. 나는 나보다 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을 보면 그가 어떻게 생활을 하고 또 공부를 하는지를 보고 배우려고 애썼다.



둘째는 공부한 내용을 실 생활 속에 끌여들여 유용하게 활용했다는 사실입니다. 즉 장승수 씨는 많은 노동을 하면서도 일 속에서 자기가 공부한 내용을 응용하여 나가는 많은 방법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셋째 장승수 씨는 공부하는 가운데 손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학 문제조차도 암산으로 풀 때가 많고, 다른 과목은 아예 하루종일 공부해도 연습장과 연필이 필요없다.
책을 두손에 쥐어 세우고 30mm 이상의 거리를 유지한 채 책과 눈싸움이라도 벌이는 듯 글자를 뚫어지도록 쳐다보고 앉아 있는 것이 나의 공부하는 자세다. 이렇게 머리 속으로 몇 번 되뇌이면서 무엇을 외운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암기의 효율이 떨어질 것처럼 생각되지만 조금 익숙해지면 써서 외우는 것과 그 효율에 있어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외우는 방식도 습관을 어떻게 들이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넷째, 흔히들 성적이란 것이 공부하는 양이 증가할수록 우상향하는 직선 또는 곡선의 형태로 끊임없이 상승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공부를 하고 또 해서 그 축적된 양이 일정한 수위에 오를 때 까지는 아무런 외형적인 성과도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계속해서 쌓여 가는 공부량이 어떤 수위에 이르는 순간, 그 동안 축적되어 온 것들이 일시에 터져 나와 확연히 눈에 띄는 성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또한 성적이 향상 될 수록 정체기는 길어지고, 정체기가 길수록 도약하는 정도는 높아진다. 그러므로 꾸준히 열심히 하는데도 성적이 잘 오르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하고 공부를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언젠가는 분명히 노력의 결과가 현실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믿고, 그런 위기의 순간일수록 더욱 공부에 정진하는 것만이 정체기를 줄일 수 있는 지름 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은 공부가 잘 안 되니까 하루 쉬고, 내일부터 열심히 하지 뭐.'하는 식으로 위기의 순간과 타협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렇게 안 된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공부를 하면서 또 한가지 유념해야 할 점은 항상 '왜?'라는 질문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책에서 새로운 사실을 접하게 될 때마다 왜 그런지를 꼭 따져 봐야 한다.



그리고 과목별 학습법도 장승수 씨가 공부한 방법이 자세히 소개되고 있습니다.



국어는 사설을 비롯해서 신문이나 주간지 등의 예술, 과학, 컴퓨터 등에 관한 기사, 계간 학술지에 실린 논문들 중에서도 비교적 일반인들이 읽기 쉬운 글들, 그리고 단편소설과 시집 등을 가능하면 많이 읽으려고 애썼다. 글을 읽을 때 반드시 국어사전을 찾아보는 습관을 기르라는 것이다. 왜냐면 문장을 이루는 기본 단위인 단어를 정확히 해독하는 것이 올바를 독서의 필요 충분 조건이라는 사실은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영어는 영영 사전을 즐겨 보았다는 점이다.  차라리 문법 실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덜 지루한 독해공부로 바로 들어가 버렸다.
이렇게 독해 공부를 하면서 문법적 구조가 파악되지 않는 구문을 만나면 대개 그 자리에서 문법책을 뒤적여 이해를 하고 넘어간다.
영문 독해를 할 때는 일단 전체를 한 번 읽어 보는 것이 좋다. 그리고 나서 첫 문장부터 다시 꼼꼼히 검토해 나가는 것이다.
독해와 관련하여 한 가지 더 강조하고 싶은 점은, 혼자 힘으로 뜻을 파악해 보겠다는 생각 대신, 잘 안 된다 싶으면 해설부터 보려고 하는 끈기 없는 태도를 갖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  또 하나, '영어 공부'하면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단어장이다. 반복해서 자주 보는 것이야말로 영어 단어를 완전하게 소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수학은 누가 장승수 씨에게도 수험 준비를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과목이 무엇이었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단연 수학이었다고 말할 것이다. 수학은 기초가 중요하다. 수학에서의 기초란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것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과 과정에 등장하는 모든 정의, 정리, 법칙, 원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너무나 뻔한 이야기지만, 수학 문제를 풀다가 잠시 생각해 보고 잘 안 된다고 해서 답부터 넘겨 보는 것만큼 안 좋은 태도는 없다.  어떤 사람들은 수학 문제집을 사면 답안지부터 찢어 버리라는 말까지 하곤 한다. 답을 보지 않고 혼자서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과 끈기가 필요하다. 잘 풀리지 않는 문제가 나오면 그걸 붙잡고 금싸라기 같은 자습 시간을 온통 다 바쳐 가면서 끙끙 거릴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머리 속에다 암기를 해 놓고 이런저런 자투리 시간에 틈틈이 생각을 해보는 방법이었다. 수업 사이의 쉬는 시간, 도시락을 먹을 때, 학원에서 집까지 오고가는 시간, 자려고 누었는데 잠이 쉬 들지 않아서 뒤척일 때 등등 의외로 무심코 흘려 보내는 자투리 시간이 많다.



이 밖에도 예습없이 듣는 수업은 시간 낭비기 때문에 꼭 예습을 해야 한다는 것과 교과서가 장승수 씨에도 길이요, 진리였다는 사실입니다. 흔히 교과서에는 기본적인 내용만 들어 있어서 그것만으로는 마음 놓고 시험장에 들어가기가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상적으로 고교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행한 학생들이라면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들로 출제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말을 듣는 사람들은 그저 한 번 해보는 소리, 맨날 상투적으로 늘어놓는 소리로 치부해 버리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사실을 그렇지 않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장승수 씨에게 왜 공부가 가장 쉬웠냐고 한 기자가 질문했을 때, 장승수 씨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아무리 공사판에서 일을 열심히 하고 또 잘한다 해도 공부하는 것만을 못했다. 얼마나 일이 고달팠으면 공부가 가장 쉬었다고 할까 하고 동정하는 사람과 공부가 가장 쉽다니 건방진 소리 하는구나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쉬웠다는 것은 머리가 좋다거나 공부에 선천적인 자질이 있다는 것과는 별개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으니까. 쉬워서 공부를 시작한 게 아니라 공부에 매달리다 보니 쉬워졌다.
'쉽다'는 것의 원인은 '재미있다'는 것이다. 재미있으면 열심히 하게 되고, 열심히 하면 쉬워지게 마련이다. 일단 공부에 재미를 붙이는 것이 급선무다.



이밖에도 이 책에는 국민 학교 때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마져 병져 누운 가난한 장승수 씨의 눈물겨운 가정 이야기와 햇빛 좋고 공기 좋은 산에 와서 일하는 노가다가 마치 소풍 나온 것처럼 즐거웠다는 이야기, 그렇기에 서울대 법대 친구들과 이번 겨울 방학 때 노가다를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도 실려 있습니다. 그리고 노가다를 한다면 자신의 실력이 땅바닥에 10원짜리 동전을 하나 떨어뜨려 놓고 있는 힘을 다해 풀 스윙을 해도, 정확하게 날 끝이 동전을 찍을 수 있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나오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뒤늦게 철이 들어 나 자신을 돌아보니 너무나 가진 것이 없이 세상을 살고 있었다. 그것은 비참한 느낌이었다. 그대로 살아야 한다면 미래는 보잘것없는 것이 될 게 분명했다.
오기가 일었다. 그래서 내 삶을 제한하는 조건들을 거부하기로 했다. 지난 5년 동안은 바로 이러한 것들과 싸워 온 시간들이었다. 가장 큰 걸림돌을 나로 나 자신의 한계, 내가 가진 선천적인 열등한 조건들이어었고, 그러므로 내가 넘어야 했던 가장 큰 산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는 '희귀한 독종'이 아니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어 그것에 몰두했을 뿐이다.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히고 얻어터지며 실패를 거듭했지만 그게 끝이라는 생각은 안 해봤다. 다시 일어날 때마다 맷집도 조금씩 생겨났다.



처음엔 무엇 하나 갖춘 것 없는 나 자신이 싫었지만 차츰 나 자신에 내재된 '잠재력'을 확인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열정과 가능성을 나뿐만 아니라 모든 보통 사람에게 숨겨진 위대한 에너지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이 2책을 읽는 사람들이 각자의 삶에 내재된 그런한 가능성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누구도 자신이 원하지 않은 삶을 살 필요는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운명을, 한계를 바끌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럴 힘이 있다.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히고 얻어터지며 실패를 거듭했지만 그게 끝이라는 생각은 안 해봤다. 일을 해야 할 땐 일에 몰두하고, 공부를 할 땐 공부에 매달렸다.
그러나 합격 이후 들려오는 주위의 평가와 애기들은 나를 꽤 당황스럽게 했다. 이제 고작 대학교 1학년인 내게 '출세'란 얼마나 가당찮은 말이며, 또한 아무리 서울대학교 수석 합격자라고 해도 그가 장래에 나라를 위해 무슨 일은 할지 어떨지는 어디까지나 두고 봐야 할 일이 아닌가.
그리고 나에게는 지금 그토록 원했던 서울대학교의 학생이 되었지만 그것만 빼고는 나에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서울대를 목표로 삼은 것은 '최고'라는 이름 때문도, 드라마에 나오는 '야망' 같은 것 때문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내게 주어져 있던 한계를 한계로 인정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싫었다.


 


지난 5년간 입시 공부를 하면서 내가 얻은 게 있다면 사람에겐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장래에 내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할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앞으로도 배워야 할 것은 산더미 같고 내가 넘어야 할 한계도 무수히 많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한계들을 뛰어넘기 위해 나는 다시 신발끈을 고쳐 매야 하리라.
이제 나는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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