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가 되려는 M에게 건네는 편지
 

M의 마음은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나 역시 직장생활을 하며 그것이 내 길이 아니라고 느껴보았기 때문이지요. 아마도 어서 직장을 그만두고 번역가가 되는 길에 매진해야 할지, 지금 상태로 좀 더 시간을 두고 준비해야 할지 고민이 많을 겁니다. 그와 관련하여 몇 가지 변변치 않은 조언을 해볼까 하니 들어보고 슬기롭게 판단하기 바랍니다.


사람은 꿈을 먹고 삽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미래가 없는 사람은 공허함을 떨쳐버리기 어렵지요. 하루하루 연명하는 것은 동물의 삶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것으로도 좋다면 누가 비난하겠냐마는, M이 고민하는 까닭은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이기 때문이 아닌가요. 꿈이 있다면, 하고 싶고 되고 싶은 뭔가가 있다면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는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일단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이미 절반은 온 셈이지요.


강을 건너간다고 상상해보세요. 가고 싶은 곳, 목적지는 있지만 아직 그곳에 다다르지 못했기에 강을 건너려 하는 것이지요. 강의 물살이 센지, 강의 폭이 얼마나 넓은지, 그것도 모르는 채 덮어놓고 물에 몸을 던진다면 중간에 빠져 죽게 될지도 모릅니다. 건너가지도 못하고 되돌아오지도 못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누군가 구해주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형편에 이르게 되지요. 이래서는 안 될 겁니다. 먼저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물살이 얼마나 센지 알아야 합니다.


그런 뒤에 할 일은 강을 건널 배를 만드는 것입니다. 배는 지금 있는 곳에서 재료를 구해서 만들어야 합니다. 강물에 뛰어든 뒤에 배를 만들 수는 없지요. 지금 하는 일을 활용하세요. 거기서 여러 가지로 재료를 얻어서, 그걸로 배를 만드는 데 쓰는 겁니다. 배란 무엇인가. 건너가는 데 필요한 도구지요. 번역가가 되려는 M에게 필요한 배는 어떤 것일까요? 어떤 구성물로 만들어야 할까요? 다름 아닌 '기본 기술'입니다.


우선 '읽기 능력'이 필요합니다. 지망생 가운데 시간이 지나도 번역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우선은 읽기 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읽기 능력은 누구나 노력하면 기를 수 있으니, 내가 예전에 써둔 글을 참고하세요. 덮어놓고 많이만 읽는다고 읽기 능력이 향상되지는 않습니다. 그 역시 체계적일 필요가 있어요. 읽기 능력이란 우리말/외국어 모두에 해당합니다.


다음으로 '쓰기 능력'이 필요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지요. 번역은 결국 '다시 쓰기'입니다. 읽기 능력이 탁월하여 비평가 수준이라 해도, 그것을 작가처럼 써내지 못한대서야 무의미하지요. 글을 자주, 많이 써보세요. 그것이 우선입니다. 그런 다음에는 어떻게 써야할지 고민하면서, 글쓰기 관련 책을 사서 읽어보며 배우세요. 먼저 배울 것은 '바르게 쓰기'입니다. 그 다음에 '유려하게 쓰기'를 배워야지요.


이 두 가지 기술이 있으면 배는 만들 수 있습니다. 이 재료조차 없다면, 기본 실력조차 없다면 아직 준비가 덜 되었으니 시간을 두고 준비하는 편이 좋습니다. 뗏목으로는 멀리 갈 수가 없습니다. 유람선을 만들 필요는 없으나 적어도 강을 건널 수는 있는 배여야 하니까요.


배를 만드는 데 또 필요한 것으로 열정이 있습니다. 열정이 강하다면 조금 힘들어도 강을 건널 수 있습니다. 배가 좀 부실해도 괜찮습니다. 열정으로 버틸 수 있습니다. 또 필요한 것은 연료입니다. 현금이지요. 배가 건너갈 때까지 기름이 떨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지요. 준비가 잘 된 사람이라면 1년 정도면 번역가로 데뷔할 수 있습니다(내가 지켜본 바로는 그렇더군요). 준비에 1년, 그래 별 것 아니구나, 아닙니다. 1년 뒤에 데뷔하여 책을 맡았더라도, 그 책을 번역해서 끝내는 데 석 달, 그 책이 나오고 번역료를 받는 데 또 석 달이 걸리니, 결국 짧게 잡아도 1년 6개월을 기다려야 돈을 만져볼 수 있지요. 그렇다고 그 돈이 천 만원인가요 이천 만원인가요. 책이 연달아 들어온다는 보장은 있나요? 적어도 이 정도 기름은 준비해두고 배를 띄워야 합니다.


배를 띄운다는 것은 지금 있는 곳을 떠난다는 말입니다. 직장을 내던져야겠지요. 물론 직장을 버리지 않고도 배를 띄울 수 있습니다. 평소에 공부할 시간만 충분하다면 얼마든지 직장에 머무르면서 건너올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최선일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언젠가는 직장을 그만두고 완전히 이쪽으로 건너와야 합니다. 그 시점을 언제로 잡느냐는 M이 직접 판단해야 합니다. 자신의 상황에 따라, 가족을 돌봐야 하는지, 월 생활비가 얼마인지 등 여러 가지에 따라 달라질 겁니다. 그것을 결정하여 직장을 그만두었을 때, 그때 더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시간이라는 가장 귀중한 자원을 허비하려고 노리는 적은 너무나 많습니다, 미드/일드를 앞세운 TV 군단, 재미있는 영화, 친구들과 수다, 게임, 베개와 씨름하기, 방바닥과 친밀해지기 등 시간을 잡아먹는 기생은 끝없이 이어집니다. 여기에 굴하지 않으려면 자신의 고삐를 바짝 당겨줄 프로그램이 있어야 합니다. 이럴 때 함께 공부하는 스터디나 학원이 도움이 될 겁니다. 잘 활용하면 그 무엇보다 귀중한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리 강을 건너가본 사람에게 어떻게 건너갔는지, 그때그때 어떻게 대처했는지 물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지요.


배를 띄운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본격적으로 공부한다는 뜻입니다. 마치 입시생처럼, 오로지 번역 생각만 하는 것이지요. 당구를 쳐보았는지 모르겠네요. 탁구나 테니스 등 다른 운동도 좋습니다. 처음 배우기 시작하여 재미를 느끼게 되면, 어디를 가도 당구공이, 탁구공이, 테니스공이 보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어떻게 공을 쳐서 어디로 보낼지 상상하게 되지요. 마찬가집니다. 번역 공부할 때도, 자나깨나 번역만 생각하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것저것 벌이지 마세요. 한 가지에 몰입하는 겁니다. 번역 실력을 기르는 데만 집중합니다. 밥을 먹으면서도, 잠자기 전에도, 세수를 하면서도, 번역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면 M에게 좋은 열매가 열릴 것입니다.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 해도 번역가로 자리를 잡고 월 소득이 평균 2-300이 되려면 2년은 잡아야 합니다. 이런 점까지 감안하면 무조건 덤벼들어서 될 일은 아니지요. 어쩌면 M은 지금 직장에서 엄청난 회의를 느끼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미 마음이 떠나서 사무실 사람들 얼굴도 보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잘 생각해보세요. 진정 지금 하는 그 일을 더 잘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그 일에서 의미를 더 많이 찾아낼 방법은 없을까요? 이에 관해서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이키루>라는 영화를 추천하고 싶군요. 꼭 한번 보세요.


M이 가고자 하는 길이 험하고 어렵다 해도, 그 길에서 기쁨을 찾아내고 그 기쁨을 다른 이와 나눌 수 있었으면 합니다. 남에게 기쁨을 준다는 것은 얼마나 멋지고 가슴 뛰는 일인가요.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 기쁠 때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기쁨과 행복을 줄 때 더더욱 행복한 것이 아닐까요. 번역이 멋진 일인 까닭도 어쩌면 거기에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누군가 좋은 책을 읽고 거기서 웃고 울며 배우고, 마음의 나이테가 한 줄 더 새겨지게 하는 데 동참할 수 있다는 것.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부디 꿋꿋이 그 길을 걸어가기를 기원합니다.


-멀리서 당신을 지켜보고 있는 K가

 
 
출처:

http://translatorsweekly.com/howto.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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