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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형 크리스천

문봉주 지음

두란노/2004년 1월/288쪽/10,000원

 

▣ 저 자 문봉주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와서 동북아1과장, 주 중국 공사, 아태국장, 뉴질랜드 대사, 주미 정무 공사 등을 역임하고 현재 본부 대사로 있다. 국내외 교회에서 ‘성경의 맥을 잡아라’와 이 내용을 심화한 ‘체험하는 성경의 맥’ 성경 공부 모임을 이끌고 있다.

문봉주 집사는 예수 믿는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사는 재주가 있다. 아태국장, 뉴질랜드 대사, 주미 공사 등 한국을 대표하는 외교관이라는 간판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공직 생활 가운데서도, 어느 성도 못지 않게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일하는 하늘나라 대사라는 신분 때문이다. 그는 해외에 있든 국내에 있든 새벽 기도로 하루를 열고, 개인 시간 대부분은 ‘체험하는 성경의 맥’이라는 성경 공부 모임을 준비하고 인도하는 데 쏟아 붓는다. 평신도들은 물론 목회자들까지도 긴장하게 만들만큼 열정적인 하나님의 사람이다.

▣ Short Summary

문봉주 대사가 삶의 현장에서 깨달은 인생의 불황에서 일어나는 법! 말씀은 인생의 핸들이다! 기도는 인생을 움직이는 동력 전달 장치이다! 새벽 기도는 문제 해결의 운동력이다! 새벽 기도로 일어나라!

 

이 책은 저자가 모태 신앙이었으나 마흔두 살이 넘어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슴으로 깨닫게 되기까지, 그리고 위암 4기라는 죽음의 문턱에서 말씀과 기도의 은사를 받고 성령 충만한 삶을 살게 되기까지의 기록을 찬찬히 담고 있다. 이 책의 장점은 간증의 형식을 띠고 있어서 읽기 쉬우면서도 하나님을 만나는 구체적 매뉴얼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그런 탓에 이 책을 읽으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말씀과 기도로 생활하는 지은이의 강력한 영성에 은혜를 받지 않을 수 없다. 새벽형 크리스천으로 변하고야 말리라 결단하지 않을 수 없다. 성령 체험을 갈망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 인생의 불황과 믿음의 방황을 끝내지 않은 사람은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쯤은 무릎을 치게 될 것이다. 왜 인생이 이렇게 힘들고 고달팠는지, 기도할 때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없었는지, 말씀을 잘 아는데도 내 손과 발이 주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쉼 없는 말씀 묵상과 기도로 새로운 힘을 성령님께 공급받지 않고서는 진정으로 거듭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것이 지은이가 말씀과 기도로 훈련받는 가장 효과적인 프로그램인 '새벽 기도'로 하루를 여는 이유이며, 우리에게 새벽 기도를 강권하는 이유이다.

 

▣ 차례

프롤로그 - 나는 어둠형 인간이었다

 

1부 말씀은 인생의 핸들이다

1장 하나님의 뜻을 몰랐던 이유

2장 말씀을 배우는 삶

3장 말씀 먹기의 즐거움

4장 실전! 말씀 먹기

 

2부 기도는 인생을 움직이는 동력 전달 장치다

1장 기도가 어려웠던 이유

2장 기도 훈련

3장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기도의 즐거움

4장 실전! 기도

 

3부 새벽 기도는 문제 해결의 원동력이다

1장 새벽 기도를 드려야 하는 이유

2장 새벽 기도의 신령한 축복

3장 응답받는 새벽 기도

4장 실전! 새벽 기도

 

프롤로그 - 나는 어둠형 인간이었다

삶 속에 슬며시 어둠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대학 생활을 시작한 1960년대 후반인지 졸업 무렵인 1970년대 초반인지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어둠이란 놈은 ‘아차’ 하는 순간, 내 멱살을 잡아채기 시작해서 어느 틈에 아예 내 위에 걸터앉아 버렸다. 그러나 나는 아주 순순히 그놈의 술책에 넘어가 주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왜 이제야 이런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냐는 듯 그놈을 껴안고 뒹굴기 시작했다. 그놈은 내 가장 절친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어머니가 뱃속에서부터 심어 준, 외할머니와 이모가 함께 길러 낸 20여 년 동안의 신앙심은 그렇게 내 마음밭에서 뽑혀져 나갔다.

 

내 어린 시절은 행복한 편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돈을 벌겠다며 바닷가 뱃전을 전전하던 때였고, 어머니는 다른 곳에서 지내셨다. 나는 어머니가 걸어 올라오시던 길 어귀에서 한참을 서성거리기 일쑤였다. 누이와 나는 단둘이서 창신동 하늘 높은 데 있는 판잣집을 지켰다. 그렇지만 나는 한 번도 내 처지를 비관하거나 우울 증세에 시달린 적이 없었다. 그것이 지금도 참 신기하다. 늘 자신만만했고 삶의 어느 것도 문제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성격이 그렇게 낙천적이었던 것은 어린 마음에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기타를 배우게 되었던 나는 얼마나 깊게 빠져들었던지, 그룹사운드까지 조직해서 휴학을 하고 연주활동을 할 정도였다. 뒤늦게 그 길에서 돌아서 고3으로 복학했을 때는 열등반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공부에 박차를 가해 당당히 서울대 외교학과에 합격했다. 내 꿈은 고1때부터 독일의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 같은 인물이 되는 것이었다. 그가 재상이 되기 전에 외교관이었다는 것을 알고 외교관이 되겠다고 작심한 터였다. 다행히 대학 졸업 무렵 곧바로 외무 고시를 통과할 수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 때 의전 비서실에서 파견 근무를 하고, 그 후 외무부 동북아1과장을 하면서 나는 스스로를 얼마나 대단한 사람으로 여겼는지, 그야말로 기고만장해서 밤만 되면 강남 술집들을 주름잡는 생활을 했다. 나는 능력과 젊음과 호기로 치장된 사내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술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술을 끊는다면 주위 사람들이 모두 사라질 것만 같았다.

 

사람들과 세상적으로 놀아나는 데 탁월함을 발휘할수록 하나님과는 점점 더 멀어져 갔다. 그렇지만 그런 생활 가운데서도 주일을 지킨다든가 십일조를 한다든가 잠자리에 들기 전에 기도를 한다든가 하는 것은 그야말로 생활 습관으로 굳어져 있었다. 교회에서 집사 직분도 받았고, 봉사가 필요하다면 선뜻 순종했다. 그러나 당시 이런 신앙의 습관은 구원의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저 세계를 움직이는 하나님은 계신다는 단순한 믿음에서였다. 나는 이처럼 한번 붙잡힌 가슴속 어둠에서 여전히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제1부 말씀은 인생의 핸들이다

하나님의 뜻을 몰랐던 이유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어느 주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날 아침도 교회에 가려고 아내와 집을 나섰다. 물론 여느 주일 아침과 마찬가지로 내 몸에서는 지난밤의 술 냄새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 예배가 시작되고, 사도신경을 외우고 나서 찬송을 부르는데 갑자기 아내가 내 입을 틀어막았다. “술 냄새 나니까 입 다물어욧!” 그 순간 나는 숨이 턱 막혔다. 마치 커다란 돌문 같은 것이 내 머리를 콱 찍어누르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불교 신자였던 아내가, 나를 따라 교회를 다녔을 뿐인 아내가,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가증스러운 입을 제발 다물라고 말하는 거였다. 아내는 하나님을 대신해 화를 내고 있었다.

 

사실 그 즈음 나는 외무부에서 엘리트 코스라고 할 수 있는 워싱턴 주미 대사관에 부임할 차례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는데, 워싱턴이 아니라 스위스 제네바로 발령이 나 그 상황을 감당하기 힘들어하고 있던 참이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진지하게 ‘내가 정말 크리스천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하나님은 그때를 빌어 내 마음에 믿음의 씨앗 하나를 심어 주셨다. 이제부터라도 좀 크리스천답게 살아야겠다는 소망을 심어 주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있고, 그것을 믿게 되는 순간 하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신다. 이때 우리가 내어 드릴 수 있는 공간은 겨자씨 만한 공간밖에는 되지 않는다. 마음이 온통 세상 의식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작은 공간 속에서 주님은 일을 시작하신다. 마침내 그분은 조용히 내 안에 들어오셔서 ‘하나님을 알고 싶다’는 한 알의 작은 씨앗 같은 소망을 품게 하셨다.

 

파리에서 스위스 제네바로 가는 스위스 에어라인을 타면서 그렇게 즐기던 일본 담배와 라이터를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짤막한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제 힘과 의지로는 도저히 담배를 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나를 변화시켜 주시려면 담배를 끊게 해 주세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러 차례 시도에도 끊을 수 없던 것이, 제네바에 도착한 뒤로는 담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제네바라는 도시가 10시 이후에는 조금만 시끄럽게 굴어도 경찰에 신고가 들어갈 정도로 밤 문화 환경이 술과 담배를 끊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나님은 정말 나를 변화시키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말씀을 배우는 삶

제네바에서 나를 환영하는 저녁 약속이 잡힌 날 낮에 진지하고 성실해 보이는 참사관이 나를 찾아왔다. 나는 퍼뜩 스위스로 출발하기 전에 어느 분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제네바에 가면 재무부에서 나온 참사관이 있을 거예요. 엄낙용(후에 재경원 차관과 한국산업은행 총재를 역임했다) 집사님이라고요. 아주 신앙이 좋은 분이니 그분한테 많이 보고 배우세요.” ‘바로 이 사람이구나!’ 나는 단박에 알아차렸다. 진정한 크리스천이 되고 싶다는 결심으로 가득 차 있던 나로서는 이분을 놓칠 리가 없었다. 그 날로 우리 부부는 엄 집사님과 세 가정이 모여서 하는 성경 공부 모임에 합류했다.

 

성경 공부 모임을 시작한 뒤로 나는 날이 갈수록 새로운 열정과 기쁨에 휩싸여 그날을 기다리곤 했다. 나는 엄 집사님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그는 당시 스위스에 유학 와 있던 청년들에게 성경 공부를 가르치기도 하면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위해 무던히 애쓰고 있었다. 그를 보면서 많은 도전을 받은 나는 성경 공부에 더욱 열심을 냈다. 하루는 엄 집사님이 본국으로 돌아가게 됐다면서 내게 자신이 이끌던 유학생 성경 공부 모임을 인도해 보라고 했다. 나는 그 모임을 이끌던 중 칼뱅의 예정론도 제대로 모르는 나의 무식함에 수치심을 느끼면서 성경에 대해 어지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교만을 내려놓아야 했다.

 

그 무렵 성경을 체계적으로 배워야겠다는 내 결심에 불을 당긴 책 한 권이 있었다. 김성일 권사의 『성경대로 살기』라는 책이었는데, 읽을수록 글쓴이의 폭넓은 성경 지식에 깊이 매료되었다. 이 대단한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서 저자 약력을 들춰보니 웬걸, 한 대기업의 중견 간부이자 『땅끝에서 오다』라는 소설을 썼던 평신도였다. 그 책에서 김성일 권사는 “나도 성경을 잘 몰랐는데, 예상치 않은 아내의 암 선고를 접하고는 말씀을 급히 먹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할 때 서둘러 신을 신고, 허리띠를 띠고, 지팡이를 짚고 유월절 음식을 먹었듯이 나도 그렇게 체할 정도로 급히 말씀을 먹었다.”고 고백했다. 나는 더 늦기 전에 말씀을 먹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제네바 근무를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나는 성경 공부 프로그램을 찾아다녔다. 온누리교회에서는 거의 매일 밤 성경 공부 세미나가 열렸다. 그 당시 하용조 목사님은 ‘말씀을 배우든지 가르치든지 하라’고 시도 때도 없이 말씀하셨는데, 나는 가르칠 군번이 안 되니 배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토요일 오후만 되면 두란노서원을 찾았다. 성경에 관해서라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의 책별 강의는 물론이고 중보 기도 같은 신앙 성장과 관련된 세미나도 쫓아다녔다. 몸은 비록 힘들고 피곤했지만, 주님이 새롭게 부어 주시는 은혜 가운데 저녁마다 성경 공부를 해 나갈 수 있었다.

 

말씀을 새롭게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변화된 크리스천으로서 삶을 진실하게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마구 불타올랐다. ‘적어도 크리스천이라면 이러이러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이 들릴라치면 곧바로 실행에 옮기려고 노력했다. 그때 한창 온누리교회에서 강조하던 것은 새벽 기도였다. 하 목사님은 새벽 기도가 개인의 신앙 성장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를 자주 설교하셨다. 나는 그 권면에 순종하기로 했다. 항상 밤늦게 잠을 자던 내게는 대단한 무리였으나 새벽 기도로 내가 정말 변화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서 강행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진짜 맞았다. 하루는 새벽 기도를 마치고 졸린 눈을 부비면서 예배당 밖을 빠져나가는데 낯익은 사람과 딱 부딪혔다. 기절초풍할 일이었다. 그 사람은 바로 나와 함께 강남 술집을 주름잡던 외무부의 소문난 한량 김광동 심의관이었다. 강남의 한량 둘이 새벽에 예배당에서 꽝 마주쳤으니 서로 얼마나 놀랐겠는가. 혼자 하기 힘드니까 같이 하라고 하나님은 동역자를 허락해 주신 것이다. 우리는 매주 월요일 아침에 만나서 서로의 다이어리에 저녁 성경 공부 스케줄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1995년,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중국에서 함께 근무하게 되었다. 그는 경제 공사였고, 나는 정무 공사였다.

 

말씀 먹기의 즐거움

중국에 있으면서 김광동 심의관과 나는 북경한인교회를 섬겼다. 그런데 하루는 담임 목사님께서 나를 부르시더니 청년부 성경 공부를 맡아달라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만 앞이 깜깜해졌다. 많이 배웠던 것은 사실인데 머릿속에 체계적으로 정리된 것이 별로 없었다. 이 문제를 놓고 새벽에 주님께 기도드릴 때 주님은 영감을 주셨다. ‘성경의 맥을 잡는’ 성경 공부! 이 방법이야말로 교회를 다닌 지 오래되었으나 말씀을 읽기 어려워하는 평신도들에게는 꼭 필요한 성경 공부니까, 북경한인교회 청년부에게도 아주 유용하리라는 판단이 들었다.

 

물론 청년들은 대환영이었다. 말씀을 그렇게 사모하고 있었는데 얼마나 기쁜 소식이었겠는가. ‘성경의 맥’을 잡아가는 데 무려 8개월이 걸렸다. 어느 날 함께 공부하던 청년 하나가 내게 카드 한 장을 건넸는데 그 안에 “함께 말씀을 공부하면서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되살아났다.”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가장 죄인이라고 생각했던 나 같은 사람을 통해서도 말씀을 전하시다니….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니….’ 사실 나는 늘 가슴 한 곁이 허전했었다. 기도를 하는 순간에도 ‘나’를 의심했다. 나 같은 위선자가 하나님을 사랑해도 되는가. 그런 불안 한가운데 있는 나를 주님은 안아 주셨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대사관에 나를 찾는 손님이 한 분 오셨다. 아들 비자 문제로 찾아온 중국인 의사였는데, 비자를 받을 수 있게 해드리자 고맙다면서 내 건강에 대해 몇 마디 묻더니 무조건 자기 병원으로 와서 건강 검진을 받으라고 했다. 다음 날 병원에 가서 내시경 검사를 받은 나는 며칠 후 위암 4기라는 판정을 받았다. 도저히 실감할 수가 없었다. 하나님은 내게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보다 궁금했다. 나는 믿을 만한 친구 한 사람에게만 말하고 휴가를 얻어 급히 서울로 향했다.

 

아내는 자신의 감정 따위는 모조리 숨기고 아픈 자식을 위로하듯이 나를 대했다. 나는 그때 아내가 얼마나 커 보였는지 모른다. 서울대학병원에서도 진단 결과 위암 4기였다. 아내와 마로니에 공원 근처의 한 카페에 바람을 쐬러 나갔다. 그때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창밖을 보면서 나는 그야말로 ‘창조주’를 생각했다. 청년의 때에 창조주를 기억했다면…, 그랬다면 40대 중반에 이렇게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지는 않았을 텐데…. 나는 내 앞에 마주 앉은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내에게 제일 미안했다.

 

시편 23편 말씀대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거니는 동안 주님은 나와 함께 계셨다. 하나님은 수술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해 주셨다. 그러나 중국으로 돌아와 항암 치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나는 영육간에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을 헤맸다. ‘나’라는 존재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절실하게 다가왔다. 모든 것이 원망스럽다가도 주님께 나를 드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외교관이라는 탄탄한 세상의 직업과 학력과 가정…. 원래 내 것이 아니었던 모든 것들, 그리고 이 생명마저도 원래의 주인에게 모두 되돌려 주어야 했을 때, 내게는 정말 하나님을 찾는 영혼의 소리밖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

 

처절한 고통 속에서 나는 말씀을 붙잡고 하루 하루를 버텨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와중에도 청년부 성경공부 인도 때문에 구약 성경을 보고 있을 때였다. 그 말씀이 신약 성경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득 그와 관련된 신약 성경 구절이 마음속에 떠오르는 게 아닌가! 성경 구절들이 가슴속에 프린트되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목사님 설교 내용까지 머릿속에 고스란히 기억나는 거였다. ‘아! 이것이 말씀의 은사로구나.’ 아무리 노력해도 외워지지 않던 성경 구절이 몇 번만 보면 척척 마음 한가운데 새겨지는데, 신구약 성경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지혜, 말씀의 행간을 읽는 눈도 그때 열렸다. 그때의 놀라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쩌면 나는 그 놀라움과 감격으로 항암 치료의 고통을 이겨냈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바로 고통의 시간을 축복의 시간으로 바꿔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였던 것이다. 하나님은 내 생명을 구원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담대하게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성령의 선물(말씀의 은사)을 허락하신 것이다. 정말 고난은 내가 전에 생각하지도 못한, 하나님이 주신 새로운 축복의 시작이었다.

 

실전! 말씀 먹기

얼마 뒤 내가 새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아태국장이라는 중직을 맡게 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것이 고통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을 때 주님이 주신 축복의 실체였다. 나는 한국으로 들어오자마자 남서울은혜교회에서 ‘성경의 맥을 잡아라’를 7개월 과정으로 열었다. 또 이 성경 공부가 끝날 즈음에는 온누리교회에서도 그 과정을 열었다. 500명 정도로 시작한 것이 천 명을 넘어설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다른 일도 마찬가지겠지만, 성경을 제일 잘 배울 수 있는 방법은 가르치는 것이다. 만일 말씀을 배우는 데서 그쳤다면 지금의 나는 있지 않을 것이다.

 

 

제2부 기도는 인생을 움직이는 동력 전달 장치다

기도가 어려웠던 이유

처음 하나님을 알아야겠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할 무렵 하루는 설교 시간에 성도라면 하루에 한 시간은 기도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말씀이 귀에 들어왔다. 나는 앞이 깜깜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동안 나는 단지 잠자리에 들기 전과 식사하기 전에 습관처럼 잠깐 감사와 회개 기도를 되풀이하는 게 고작이었다. 교회에서도 개인기도 시간이 되면 나는 5분, 10분을 넘어서기가 어려웠는데 옆에서는 통곡을 하는 이들도 있었고, 알아들을 수 없는 나라 말, 그러니까 방언 기도를 하는 이들도 많았다. 어찌나 막힘 없이 기도들을 잘하던지.

 

나는 그때부터 말씀을 배우러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도를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다. 기도 세미나란 세미나는 마구잡이로 쫓아다니고, 기도에 관련된 책을 뒤져보기도 했다. 그러나 기도는 말씀과는 달랐다. 기도는 이해의 차원이 아니라 실행의 차원이었던 탓일까. 나도 눈물 콧물 쏟아가면서 기도하고 싶다는 것, 그때의 유일한 내 소망은 그것이었다. 그러나 소망의 깊이가 더하면 더할수록 기도란 배워서 되는 일이 절대 아니라는 사실만 확실해졌다.

 

내 기도가 너무 형식적이라서 마음에 아무런 감동이 없는 게 아닐까 고민하던 중 나도 금식기도를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추풍령에 있는 용문산기도원으로 정했다. 그러나 막상 금식을 시작하고 보니, 웬걸 외워지기는커녕 배가 고파지면서 정신만 사나워졌다. 이튿날 나는 참다못해 시간 때울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아내한테 3일 금식기도 하겠다고 큰소리치고 왔으니 끝까지는 마쳐야 했던 것이다. 버스를 타고 읍내로 내려가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마침 영화관 하나가 눈에 띄었다. 지금도 내가 금식기도 하러 갔다가 영화보러 나간 이야기를 하면 모두들 배꼽을 뺀다.

 

기도 훈련

한참 말씀을 배우면서 새벽 기도를 다니던 때, 김광동 심의관과 나는 목요일 새벽에는 어김없이 두란노서원에서 열리던 TIM 선교회 중보기도 모임으로 향했다. 하용조 목사님도 꼭 참석하시곤 했다. 하루는 기도 모임을 끝마쳤는데, 하 목사님께서 하실 말씀이 있다면서 일어났다. “TIM 기도 모임을 인도하시던 도육환 목사님이 스리랑카 선교사로 파송되십니다. 그래서 다음 주부터는 이 모임을 문 집사님이 인도해 주셨으면 합니다. 해 주실 거죠?”

이건 또 웬 날벼락인가. 혼자 기도하는 것도 벅차하는 사람인데 기도 모임을 이끌라니. 결국 나는 목사님의 말씀을 거역할 수 없어서 그 제의를 수락하고 말았다. 그 기도 모임 리더를 맡았던 8개월 동안이야말로 내게는 처절하리만큼 고통스러운 기도 훈련의 시기였다. 나는 버티는 데까지 버티다가 하 목사님을 찾아뵈었다. “목사님, 저 정말 기도 못하겠어요. 어떻게 기도하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하 목사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께 기도의 영을 달라고 기도하세요.”

 

목사님 말씀에 따라 기도의 영을 달라고 기도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여전히 기도는 어려웠다. 한 달 뒤에 또 여쭸더니 이번에는 기도 줄을 잡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빨랫줄도 아니고 철사 줄도 아니고 기도 줄이 대체 뭐냐’ 하는 심정이었다. 목사님께 서운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착실한 기도 생활을 했다. 때로는 ‘내 기도가 외식하는 자의 기도가 아닌가’ 하는 부담감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중국으로 발령이 나서 떠나게 되었는데 그렇게 가기 싫어하던 중국이었는데도 나는 기뻤다. 그 기도 훈련이 얼마나 힘들었던지 중국으로 가는 것도 좋았던 것이다.

 

중국에 와서는 새벽기도하기가 더 어려웠다. 그러다가 암 수술을 받게 되었고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나도 모르게 기도 줄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어렵게 이어져 온 기도 줄이었는데. 나는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수도 없이 내리꽂히는 도끼날 같은 고통에 치를 떨어야 했고 쪼개질 듯 쪼개지지 않는 머리통을 부여잡고 엉엉 울었다. 울면서 부르짖고 싶었고 무릎꿇고 싶었다. 그러나 외마디 소리만 나올 뿐 기도가 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알았다. 기도란 평소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임을. 평소에 기도하지 않던 사람은 갑자기 힘든 상황이 닥쳐도 기도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욥기에 보면 사탄이 하나님께 욥을 기소하는 장면이 나온다.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욥 1:10). 여기에서 사탄이 말하는 산울이란 바로 기도의 울타리, 즉 천사의 울타리를 말한다. 사탄은 욥을 치고 싶어도 그 천사의 울타리 때문에 칠 수 없으니 그걸 잠깐 치워 달라고 하나님께 부탁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천사의 울타리를 둘러 주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이다.

 

하나님은 나의 공관장으로서 첫 부임지를 뉴질랜드로 삼으셨다.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으시고 제일 적합한 곳으로 보내 주신 것이다. 우선 뉴질랜드는 자연환경이 건강을 회복하기에 아주 그만이었다. 그리고 한국 이민이 시작되어 40여 개의 한인교회가 세워졌던 때라 말씀을 전하기에 좋은 조건이었다. 나는 주말마다 비행기를 타고 웰링턴과 오클랜드를 오가면서 말씀을 전했다. 그런데 그렇게 8개월쯤 지났을까, 갑자기 몸이 좋질 않았다. 혹시 암이 재발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니, 몸과 영혼이 완전히 다운되었다. 하나님께 물었을 때 뭔가 희미하게 짚이는 게 있었다. 어느 새 내 마음에 영적 교만이 싹트고 있었다. 아무리 말씀으로 충만하다 한들 기도가 없다면 결국 영혼이 병든다는 것을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중보 기도의 위력도 실감했다. 생각해 보니, 예전 중국이나 한국에서 말씀을 전할 때는 내가 기도하지 않아도 늘 성도들의 중보 기도가 있었던 것이다.

 

갈급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려고 애쓰던 중, 당시 뉴질랜드에서 텔레비전 복음전도자로 활동하던 하버드 대학교 출신의 찰스 스탠리 목사님의 성령 충만한 설교가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나는 그분의 저서 『성령 충만 그 아름다운 삶』,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두 권을 챙겨 여름휴가를 떠났다. 그 책은 어떻게 하면 성령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는지 그분이 30년 동안 혼자서 십자가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깨달아 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기록한 것이었다. 나도 그런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에 그 책을 정말 단비처럼 받아들였던 것 같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 그 책에서는 성령 충만한 삶이란 순간적인 상태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성령님의 살아 계심을 체험해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불타올랐다. 그런데 과연 어떻게 하면 성령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는가, 내 전인격이 하나님과 하나 되는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란 말인가. 찰스 스탠리 목사님은 말했다. 단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십자가 앞에 엎드리는 일뿐이라고…. 결국 말씀과 기도와 훈련 이 세 가지가 모두 필요한 것이었다. 그 후 나는 찰스 스탠리 목사처럼 간구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방법을 알려 주세요. 제게도 증거를 보여 주세요.”

얼마 뒤 나는 예언 은사를 받은 여자 집사님을 뵐 기회가 생겼다. 그분은 대뜸 내게 방언기도를 하냐고 물으셨다. 나는 아니라고 말했고 곧 이어 그분과 나는 함께 통성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갑자기 혀가 나도 모르게 움찔대며 춤을 추었다. 방언이 터져 나온 것이다. 삽시간에 눈물과 콧물 범벅이 되었다. 함께 기도하는 중간 중간 그분이 내 방언 기도를 통역해 주셨을 때 나는 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내 방언 기도는 내가 이제까지 살아왔던 날들에 대한 기록이었다. 그야말로 세밀하게 내 모든 존재의 기록들이 몽땅 쏟아져 나오는 게 아닌가. 나는 내 모든 죄를 토해 내고 있었다. 내 힘으로 회개하려고 해서가 아니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이미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온갖 죄까지 성령님은 회개하도록 도우셨다. 무의식의 깊은 바다를 마구잡이로 휘저어 모든 것을 수면 위로 떠올리셨다.

 

더욱 더 놀라운 일은 내가 지금껏 했던 기도들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방언 기도 가운데 되살아났다는 것이다. 간절히 기도한 것도 아니고 멋도 모르고 한 기도까지도 다 나오는데 어떻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메마른 마음에 강력한 태풍이 몰아쳤다. 나는 처음으로 성령님의 충만함으로 채워지는 것을 느꼈다. 눈물의 기도 세 시간을 마쳤을 때, 나는 그 집사님에게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제 일대기를 다 아십니까?” “참 놀랍죠? 점쟁이도 아닌데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집사님 안에 계시는 성령님과 제 안에 계시는 성령님이 한 분이시니까 그렇죠.”

 

그 뒤로 나는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엡 6:18)라는 말씀대로 시간이 날 때마다 방언으로 기도했다. 기도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새벽마다 기도하는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말씀의 은사를 받았을 때와는 또 다른 감격에 몸을 떨어야 했다. 예전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가 무엇인지 몰랐다. 그때는 모든 세계를 지으시고 모든 인류를 사랑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 내 입으로 간구해 주기를 원하는 기도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저 내 신변을 위한 기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하나님은 내 의식으로는 알지 못하는 아프리카의 어떤 사람들도 이슬람에 속한 어떤 이들도 모두 사랑하시고 이들을 위해 누군가 기도해 주기를 원하셨다.

 

사실 내 삶이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며 성령충만한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은 방언 은사를 받고 나서 이천수 목사님의 영성 신학을 접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때부터 내가 인도하던 성경 공부도 ‘성경의 맥을 잡아라’에서 ‘체험하는 성경의 맥’으로 바뀌었다. 영성 신학은 말이 곧 영의 통로라는 말에 주목한다.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복음을 듣고 “아멘”으로 화답하니까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들어오셨다. 나는 말씀을 받아들였는데, 실제로 내 안에 들어온 것은 하나님의 영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흔히 살아가면서 ‘말’을 조심해서 가려 해야 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말은 바로 영이 오가는 통로인 탓이다. 성령의 역사란 별 다른 무엇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기도의 즐거움

내가 처음 ‘성경의 맥을 잡아라’를 강의할 때, 그 성경의 지식과 내 삶은 관계가 없었다. 사람들 앞에서 말씀을 전할 때와 말씀을 전하지 않을 때가 달랐지만, 그걸 누가 안단 말인가. 그런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기도하기 시작한 뒤로부터는 내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선 말씀의 뒤가 훤히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영이, 진리의 영이 부어지니까 지식의 말씀이 지혜의 말씀으로 바뀐 것이다. 그 뒤로는 말씀을 내 삶에 어떻게 적용하는가가 전하는 일보다 더 중요해졌다. 그야말로 ‘체험하는 성경의 맥’을 잡게 해 주신 것이다.

 

성경을 깊이 알면 알수록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분명하게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내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영으로 계시면서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그런데 사랑은 혼자 할 수 없다. 사랑은 반드시 상대를 가진다. 하나님은 그래서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로 사람을 지으셨다. 그렇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차릴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만드신 사랑의 통로가 바로 말씀이다. 영이 있는 존재의 공통점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을 제외한 땅의 존재들이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영이 없기 때문이다. 태초에 하나님은 사람을 흙으로 지으시고 생기(영)를 불어넣으셨다. 연약한 질그릇(흙)으로 지어졌지만, 말하고 움직일 때마다 보이지 않는 영이 임재하는 현장(생명)이 되게 하셨다. 그리고 사랑의 영이신 하나님은 자신이 사랑이심을 말씀을 통해 사랑의 대상으로 지으신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표현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3년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들에게 직접 보여 주셨다. 예수님은 병든 사람들을 고쳐 주셨고, 배고픈 사람들을 먹이셨으며, 고통받는 자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그리고 죄인인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의 목숨까지 아무 대가 없이 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삶을 보면서 ‘아! 하나님은 바로 저런 분이겠구나’ 라고 깨닫는 것이다. 이처럼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보이지 않는 영이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방도가 없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그 사랑을 사람에게 세미한 음성을 통해 전달하기도 하신다. 방언을 받고 한 달쯤 지났을까… 방언 기도를 하는데, 그 뜻이 내 마음속에 새겨지기 시작했다. 방언이 통변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까무러칠 지경이었다. 마치 나와 마주 앉아 계신 듯 아주 분명하고 똑똑하게 주님이 내게 말씀해 주셨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 줄 아느냐?”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과 놀라움에 고꾸라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제야 왜 기독교가 복음인지, 종교가 아니고 진리인지를 알았다. 모든 종파와 분파를 넘어서 존재하고 계신 주님의 그 분명한 현존 앞에서 나는 무릎을 꿇고 엎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하루는 새벽 기도를 하는데 주님이 내게 이런 음성을 들려주셨다. 내가 저축해 놓은 돈을 필요한 데 나눠주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만큼은 곧바로 순종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다음날도 똑같은 음성이 들려오는데 심장이 멎는 듯한 고통이 뒤따랐다. 영적 호흡이 막히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며칠 뒤 하나님께 필요한 곳을 알려 달라고 기도했다. 그러자 하나님은 안요한 목사님의 맹인교회와 한동대학교에 헌금하라는 응답을 주셨다. 그날 새벽 기도가 끝나고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아내는 의외로 완강했다. 자식 결혼을 위해 준비해 놓은 돈이니 함부로 헐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이 시험이 아내의 믿음을 위해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다음날부터 아내에게 순종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했다. 3주 정도 흘렀을 때 아내는 하나님께 손을 들고 말았다.

 

마침 공관장 회의가 있어서 일시 귀국하게 되었고, 도착한 다음날 아내와 나는 안요한 목사님을 찾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 전날 아내가 불쑥 말을 꺼냈다. “그래도 한 번 더 생각해 봅시다!” 아내는 그 순간에도 마음이 흔들렸던 것이다. 그 날은 군복무 중인 아들과 면회하기로 한 날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 지나 나타난 아들 녀석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안경도 쓰지 않고 한쪽 눈이 시퍼렇게 멍들어 있는 게 아닌가! “야구공에 맞아 안경이 박살났어. 병원에서는 실명 안 된 게 다행이래요….” 그 이야기를 듣는데 아내는 “아이고, 하나님….”을 찾았다. 다음날 헌금을 가져다주기로 한 곳이 맹인교회가 아닌가! 하나님의 경고가 어찌나 무서웠던지 아내와 나는 부리나케 맹인교회로 달려갔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 사랑의 영이신 성령이 일하시면 사랑의 에너지가 쏟아져 나와 감동시키시니까 말씀을 통해 머리로만 알던 사랑이 내 가슴으로 뜨겁게 전달되고 마음에 생각지도 못한 것을 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능력이다. 말씀을 아는 것만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 끊임없이 시인하고 고백할 때, 그야말로 쉬지 않고 기도할 때 우리는 구원에 이를 수 있다. 기도하지 않고는 예수님의 사랑을 온전히 체험할 수 없으며 그 사랑을 타인에게 전달할 수도 없다.

 

또 하루는 웰링턴 한인교회에서 새벽에 기도하는데, 주님이 이런 음성을 들려주셨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내 안에 찾아오셨다는 것이다. 그 시기는 어머니가 집을 나가시고 나는 엄마가 그리워 매일 같이 시장통 큰길가에 나가 엄마를 기다리며 서 있을 때였다. 그 무렵 예수님이 나를 찾아오셨다는 것이었다. ‘그러셨군요, 주님! 지금까지 살아온 게 온통 주님의 은혜였군요….’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 하나님을 알고 싶은 마음을 주신 것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나는 하나님을 알아 가면서 내 존재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감정이 눌려 있다. 죄에 사로잡혀 있든지 아픈 상처에 눌려 있는 것이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기도로 토해 내지 않으면 이 죄와 상처에서 해방될 수 없다. 자신도 모르게 눌려 있는 것들을 다 쏟아 놓게 해서 참 자유를 누리도록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이다. 슬퍼하는 자, 애곡하는 자들이 죄와 슬픔을 고백하고 성령의 평강과 위로와 사랑의 기름부음을 받을 때, 그들은 비로소 죄와 상처와 슬픔과 근심에서 벗어나 참 자유를 누린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을 충만하게 채워 주실 때, 그때에야 우리는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믿음을 고백할 수 있다.

 

실전! 기도

방언 은사를 구하라. 방언 은사는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주신 선물이다. 그래서 누구나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에게 은사를 주시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은사는 대략 20여 가지 정도가 된다고 한다. 그 가운데 신유의 은사나 말씀의 은사 등은 모두 이웃을 사랑하라고 주신 것이다. 그러나 유일하게도 방언 은사만은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하라고 주신 것이다.

 

사도 바울은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말할 정도였다. 만약 방언 기도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라면, 그렇게 겸손했던 그가 이를 자랑으로 내세울 리 없었을 것이다. 아직 방언의 은사를 받지 못했다면 이를 사모하며 달라고 하나님께 강청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분을 사랑하기 위한 것이라면, 방언 은사를 달라는 데 주시지 않을 분이 아니다.

 

그런데 방언의 은사를 받고도 통변이 되지 않으면 답답하니까 많이들 힘들어한다. 그렇지만 방언은 성령의 기름 부음으로 행해지는 일이다. “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내 경험에 따르면 그럴 때는 오히려 주님께 바짝 매달려야 한다. 그리고 내 안에 계신 주님께 통변의 은사를 간구해야 한다. 사도 바울도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고전 14:13)라고 권면한다. 강청하면 성령님이 반드시 통변의 은사를 주신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다른 사람의 방언까지 통변하는 은사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은사자들은 반드시 말씀을 먹어야 한다. 방언 기도를 할 때는 말씀으로 인도받아야 한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결코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 15:4). 포도나무에서 떨어진 나뭇가지가 스스로 능력 있다고 뛰어다니면 불 속에 던져질 뿐이다.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기도는 내 혀를 주께 맡기는 것이다. 내 혀를, 내 의지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은 바로 영의 통로를 열어 드리는 것이다. 이때 성령님이 임하셔서 말씀하신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그리고 기도에는 언제나 감사가 따라야 한다. 우리는 우리 앞에 어떤 일이 닥치든지, 그것이 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있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은 비참하지만 그것도 나를 정금 같이 연단시키려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믿고 위급한 상황이 닥칠수록 감사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은 내가 도무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더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신다. 이것이 바로 “항상 기뻐라하.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는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다.

 

 

3부 새벽 기도는 문제 해결의 원동력이다

새벽 기도를 드려야 하는 이유

하루는 중요한 약속이 있어 인사동 사거리를 지나다가 언뜻 오락실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오락실 앞에는 커다란 자동차 경주 오락 기계 두 대가 놓여 있었는데, 한 청년이 한창 신나게 오락을 즐기는 중이었다. 화면으로는 고속도로가 계속 펼쳐지고 오토바이처럼 생긴 의자 위에 가만히 않아서 좌우로 핸들만 돌리고 있는데도 이 청년은 연신 소리를 질러댔다. 어찌나 실감이 나던지…. 그런데 순간 ‘아, 저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움직이지 않는 오토바이 위에 올라가 앉아서 핸들만 돌리는 사람! 핸들만 움직일 뿐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 말씀만 입으로 나불거릴 뿐 변화가 없는 사람! 나 또한 그랬다. 성령 체험을 하기 전까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말씀을 입으로 시인하고 고백하는 쉼 없는 기도를 하기 전까지는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새벽 기도로 하나님께 집중 훈련받기 전까지는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그러나 나는 주일 대예배를 빠짐없이 드리면서도 영적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타락한 삶을 살았다. 나의 42년 동안의 삶이 그 증거이다. 이제 생각해 보니 새벽 기도야말로 삶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줄 아는 장성한 믿음의 사람들이 드리는 대예배이다. 새벽 기도를 드리고 하루를 시작하면 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게 된다. 얼굴에서 빛이 난다. 하나님과 만나는 독대의 순간에 맛을 들이면 새벽 예배를 드리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그 표현할 수 없는 감격과 은혜가 새벽의 어둠을 뚫고 나를 성전으로 향하게 하는 동력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호 6:3).

 

새벽마다 주님 앞에 나아가 그분을 찬양하고 높여 드릴 때 그분은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며 우리는 주님의 손과 발이 된다. 주님이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이다. 교회에 와서 주님의 몸을 이루어 드리면 주님은 하늘의 신령한 복을 주신다. 말씀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님이 속사람을 충만하게 채워 주시는 은혜를 받게 되는 것이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엡 1:23). 날마다 교회에 나와서 새벽을 깨우는 자에게 이러한 복이 충만하게 채워진다.

 

새벽 기도의 신령한 축복

새벽 기도의 신령한 축복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주님의 손과 발이 됨으로써 갖가지 기적을 체험하게 되며, 가정에 행복이 찾아오고, 자녀들이 잘되는 복과 물질의 복, 직장의 복을 누리게 된다. 우리 가정은 내가 변화된 뒤로 행복한 가정이 되었다. 우리 집 가정 예배는 굉장하다. 아이들 셋과 우리 부부 모두가 손을 잡고 방언으로 통성 기도를 한다. 내가 뉴질랜드에서 방언의 은사를 받고 너무 기쁜 나머지 서울에 있던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방언의 은사를 사모하라고 시켰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 모두에게 방언의 은사를 주셨을 때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각각 생활 리듬이 달라 자주는 못 드리지만, 나는 이 시간이 너무 기쁘다. 우리 가정이 주님의 몸을 이루는 천국의 모형으로 살아가게 해 달라고 다 함께 손잡고 기도할 때 정말 기쁘고 감사하다.

 

새벽 기도의 마지막 축복은 하나님께서 나의 삶의 현장을 지켜 주신다는 것이다. 2001년 5월 뉴질랜드 대사로 있을 때, 나는 여느 때처럼 웰링턴한인교회에서 새벽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도 중에 갑자기 주님의 음성이 들여왔다. “네가 뉴질랜드에서 눈물로 전했던 것처럼 워싱턴에서도 전해야 하리라.” 나는 너무 놀라서 주님께 되물었으나 똑같은 말씀을 들려주셨다. 그리고 이런 일이 있은 지 3개월이 지났을 때, 나는 정말로 주미 공사로 전근을 하게 되었다. 외교통상부 내에서 모두들 놀랐다. 그 자리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시아통이 갔으니 그럴 만도 했다. 특히 그 자리는 야심 있는 사람들이 무척 탐을 내던 자리였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사람들이 알 리 없었다.

 

우리는 보통 기도할 때 하나님이 얼른 기도에 응답해 주시기를 바란다. 그러면서도 내 기도가 주님이 원하시는 것인지 아닌지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러나 기도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이 기도는 주님께 복을 달라고 기도하는 기복 신앙과는 명백하게 구별된다. 나보다 못한 이웃에게 하나님의 복이 흘러갈 수 있도록 주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간구하는 것이다. 진심으로 이웃을 위해 간구할 때 하나님은 이웃을 도울 수 있도록 먼저 내 집을 충만하게 채워 주신다. 하나님께 응답받는 기도는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를 올려 드리는 것이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는데 왜 우리에게 항상 깨어 기도하라고 하시는가.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창조 사역에 우리가 동참하길 원하시기 때문이다.

 

실전! 새벽 기도

이처럼 중요한 기도 생활을 하기로 결단했다면, 새벽을 깨울 수 있도록 도우심을 구하라. 그러면 주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크리스천들이 자기의 의지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믿기로 결단했다고 해서 믿음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믿음은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령님이 마음을 움직이셔서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도록 하신 것이 하나님이 내 삶에 역사하신 가장 놀라운 일이다. 나 같은 골초가 담배를 끊을 수 있었던 것도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요즘 아침형 인간이 유행이라지만 아무리 건강에 좋다고 해도 몇십 년 동안 굳어진 라이프스타일(생체리듬)을 바꾼다는 것은 정말이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요즘 같은 현대인의 생활 패턴에 비춰 보면 확실히 새벽 예배를 드린다는 것 자체가 십자가의 길인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신다. 믿음은 주님만 바라보고 살겠다는 의지의 결단이다. 결단하고 주님 앞에 나가서 주님을 만나고자 하는 열망으로 뛰어다닐 때 주님은 긍휼히 여기셔서 새벽에 깨워 주신다. 그때 방언의 은사라는 선물도 주시는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기란 누구도 쉽지 않다. 새벽에 잠을 이기려고 하면 아무리 천하장사라 해도 당해 낼 재간이 없다. 새벽에는 절대 투쟁할 수 없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절대 안 따라 준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나려고 투쟁하기보다는 전날 밤에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밤과의 투쟁인 것이다. TV든 컴퓨터든 책이든 내가 즐기던 것들이 일찍 잠자리에 드는 데 방해가 된다면 이를 포기하는 의지와 결단이 필요하다. 밤의 모든 세상적인 것들을 잘라 내고 꺼 버리면 새벽에 주님을 만나 은혜 가운데 서 있는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새벽 예배를 드리고 나서 출근하기 전까지 남는 시간은 그야말로 새벽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특별 ‘뽀~너스’이다. 이 때를 직장에도 가정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신만의 시간으로 활용하면 인생이 달라진다. 책을 읽는 한 시간의 여유를 갖는 것만으로도, 운동을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된다. 평소에 배우고 싶었던 것을 배우러 학원에 가는 것도 단절 없이 배울 수 있는 이점에 있어 좋다. 나도 이 시간을 활용해서 중국어를 배웠다. 이 시간이야말로 영육이 강건해지는 하나님의 놀라운 복이다. 이 시간은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의 통로로 쓰시기 위해 훈련하시는 시간인 것이다. 여러분도 하나님과 만나는 귀한 시간, 또 자신의 내면과 만나는 귀한 시간들을 통해 삶이 변화되고 다른 이들의 삶을 주님께로 이끌 수 있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바란다.

 

이제야 그 기쁨을 알게 된 나는 오늘 저녁도 내일 새벽 성전에서 나를 만나 주실 그 주님의 품을 그리며 일상의 모든 것을 뿌리치고 잠들기 전에 침대 앞에 무릎을 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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