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edu.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1/11/2010111100534.html


[무노스의 Lead Korea] 모의 국제회의
조선일보 | 신영지 무노스 디렉터

2010.11.11 03:03

 

 
토론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존중'하는 것
대학 입시에서 취업 면접에서 요즘처럼 토론이 중요시된 적은 없는 것 같다. 이는 여러개의 정답이나 해결책이 존재하는 문제가 많아지면서, 결과 자체보다는 그 결과에 도달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논리적으로 조리 있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그러한 자신의 의견을 타인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능력 또한 매우 중요해졌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무조건 자신의 의견만을 피력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의견을 들어주고 납득할 부분은 납득하는 성숙한 토론 태도가 필요하다.

올바른 토론 능력은 하루아침에 습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어떠한 환경에 놓여 있었는지가 토론 능력의 차이를 만든다. 어린이라 해도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잘 들어주는 문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필자는 초등학생 때 미국으로 발령 받은 아버지를 따라 식구들과 미국으로 건너갔다. 아는 영어라고는 알파벳과 간단한 인사말밖에 없었는데도, 학교 수업 분위기는 한국과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선생님에게 질문하고 친구들과 서로 의견을 나누는 모습은 그저 가만히 앉아 선생님 말씀을 듣는 것에 익숙했던 나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초등학교 친구들이 대부분 같은 중ㆍ고등학교에 진학했기 때문에 이들의 생각이 커지는 모습과 더욱 논리적이고 효과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설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서로 언성을 높이거나 이기적으로 자신의 의견만 주장하는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미국 생활 중 친하게 지낸 스테이시라는 이름의 선생님이 있었다. 나는 그녀를 통해 영어와 미국문화를 더욱 가깝게 배울 수 있었다. 스테이시 선생님은 기초적인 영어밖에 몰랐던 나에게 다짜고짜 그림을 보여주며 설명을 해보라고 했다. 한정된 단어와 보디랭귀지를 사용해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덕분에 나는 그저 눈으로 보고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더 쉽고 빨리 영어를 익힐 수 있게 됐다. 또 맞든 틀리든 간에 입 밖으로 말을 끄집어 내는 과정을 통해 말하기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중학생이 됐을 때는 일상적인 대화는 물론 토론까지 가능해졌다.

고등학교 졸업을 1년 남기고 한국으로 돌아와 외고에 편입했을 때 적지 않은 차이점을 느꼈다. 선생님과 의견을 주고받는 것은 어느 순간 선생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모습으로 비치는 듯했고, 다른 학생과의 토론도 공격적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토론 자체가 부정적으로 비추어지는 듯한 모습에 아쉬움을 느끼던 중 대안으로 찾은 것이 모의 국제회의였다. 회의 참가자들은 나처럼 토론을 좋아하는 학생들이었기에 학교에서 채울 수 없었던 토론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었다. 토론을 통해 해결책을 찾고 서로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만으로도 우리는 뿌듯함을 느꼈다. 또 생각의 틀을 키우고 사고 방식을 다양하게 하면서 성숙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모의 국제회의를 통한 토론의 장은 대학에 진학하고도 계속되었는데 이는 토론이 중요한 대학 수업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아가 생각에 깊이를 더해주고 어디에서든 당당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다져주었다.

이 모든 것은 필자가 어렸을 때 자유로운 토론 분위기를 경험해 보지 못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직도 우리나라 학생들은 토론을 '이기고 지는 것'으로, '상대의 의견을 무조건 꺾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토론에는 모범답안이 없다. 따라서, 이기고 진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수상만을 목적으로 하는 토론이 아닌 진정한 해결책을 찾고 성숙한 토론문화를 습득하려는 노력을 지금부터라도 시작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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