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www.afn.co.kr/archives/tips/tip4.htm

외국어 학습에 얽힌 오해들
- 유학가면 금방 영어가 되요? 천만에요. 外
 
● 외국에만 가면 저절로 영어가 되요?
외국에만 가면 저절로 영어가 되리라는 착각은 'AFN Korea만 들으면 열흘만에 귀가 뚫린다'는 낭설만큼이나 널리 퍼져 있습니다만 아무런 기초 지식도 없이 비싼 외화를 낭비하면서 어학연수를 떠나는 것은 금물입니다.

적어도 토익기준으로 700점 이상 국내에서 실력을 쌓고 나서 그간 익혔던 내용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한 어학연수라면 균형 잡힌 영어실력의 함양이라는 측면에서 필요하지만 '집에서는 공부가 안되니 일단 뜨고 보자'는 마음으로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현실도피적 어학연수를 계획하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공부는 구체적인 계획에 의해 스스로 찾아서 하는 것이지 분위기로 인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민 가서 수 십 년 거주하신 분들의 경우에도 별도로 시간을 들여 어학공부를 하지 않으면 만년 혀짤배기 영어를 면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미국 대학에서 강의하시는 교포 교수 중에는 보다 세련된 말투의 구사를 위해 주말마다 영어회화 학원에서 땀을 흘리는 분들이 계십니다.

특히 요즘은 국내에서도 집중적인 어학 코스들이 성황리에 운영되고 있으며 이들을 통해 미국 문턱에도 안 가보았음에도 거의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분들이 속속 배출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초보자들에게 있어서 섣부른 외국 어학연수보다는 오히려 국내연수가 낫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컷 놀다 와서 '어학연수를 통해 국내에서는 얻을 수 없는 무형의 경험을 얻었다'고 눌변하는 사람도 있으나 버스 타는 법 배우고 수퍼마켓 몇 군데 안다고 해서 인생에 큰 변화가 오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교포 한 사람만 알면 하루면 배울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나름대로 충분한 준비가 되었다는 확신이 섰을 때 어학연수를 떠나야 기대하는 효과를 보게 됩니다. 예를들어 영문판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절반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6개월~1년간 어학연수를 다녀 와 봐야 큰 변화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준비된 상태에서는 외국에서 보고 듣고 말하는 모든 경험이 바로 내 것이 되지만 기초가 튼튼하지 않은 경우에는 대부분을 그냥 놓쳐 버리게 됩니다. 외국 가는 것은 그렇게 급하지 않습니다.

● 글로 써주면 알아들어요?
글로 써 주면 아는데 단지 미국식 발음을 못 알아 들어서 청취가 안 된다고 자위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러나 캡션으로 공부해 보시면 알 수 있듯 어학 학습자의 대부분은 내용을 써 줘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충분한 단어실력도, 문형연습도 되 있지 않은 상태로서 한마디로 독해를 비롯한 영어의 기본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단어와 독해공부를 하고 시사 상식을 넓히는 것이 청취력 향상을 위한 전제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한사람이 북한 사투리를 듣고 모르는 단어도 대충 짐작하며 넘어갈 수 있고 영국사람이 미국 영어를 들어도 거의 의미를 파악하듯 기초가 튼튼하다면 발음 식별에는 무리가 없으나 독해력을 비롯한 영어의 기본실력을 증진시키는 데에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기 때문에 꾸준히 공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 어린이용 프로그램이 듣기 쉬워요?
많은 분들이 만화영화 등의 어린이용 프로그램은 기본 단어만 알면 되고 어려운 문형도 나오지 않기 때문에 초보자용 교재로 적합하다고 생각하십니다.

그러나 국내에서 영어공부를 하신 분들에게는 아동 프로그램도 만만치가 않으며 오히려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즉 CNN 뉴스를 대충 알아듣는 실력으로도 어린이용 만화영화를 이해하기 힘든데 이는 미국에서 태어나 살지 않았다면 접하기 어려운 일상용어가 많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독해를 꽤 하시는 분들도 Teddy Bear, Bobby Pin, Sneaker, Solomon Grundy, Pogo-stick, Lollipop등과 같이 미국의 꼬마들도 익히 알고 있는 단어들을 처음 들어 보는 경우가 많으므로 어떤 프로그램부터 시청해야 하는지를 결정할 때 자신의 영어학습적 배경을 참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 영영사전으로 공부해야 실력이 팍팍 늘어요?
영영사전의 중요성을 필요 이상으로 강조하는 사람들은 영한사전으로만 공부하면 영어-한국어의 연결고리를 끊을 수 없으므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 특히 미국에서 발행된 - 영영사전만으로 학습하라고 합니다. 물론 일리있는 조언이지만 다른 측면으로는 반쪽짜리 영어로 인도하는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어를 배우는 목적 중 상당 부분은 영어로 되어 있는 내용을 우리말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오래 공부한 분들 중에는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면서도 막상 방송이나 신문 기사 등을 우리말로 번역시켜 보면 어학에 소질이 있는 영문과 1학년생의 번역 결과만도 못한 경우가 있는데 이는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분들은 번역을 하면서 한결같이 '무슨 뜻인지는 알겠는데 알맞은 우리말 표현을 못 찾겠다'고 답답해 합니다. 우리들의 영어실력은 우선 한국어를 잘 한다는 전제 하에서 빛을 발하는 것으로서 아무리 영어식 사고가 능숙하고 현지인 이상의 수준으로 영어를 구사하더라도 결국 우리말로 깔끔히 번역을 못하면 그 의미는 극적으로 퇴색하고 마는 것입니다. '영어로는 알겠는데 우리말로 표현을 못하겠다'는 것은 결국 어학 실력이 부족하다는 얘기로서 아무리 유창하게 구사하더라도 그것은 절름발이 영어에 불과하다고 단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걸프전(戰) 때 미국에서 수십년 이상 거주한 최상급 영어 강사들이 - 자의반 타의반으로 - CNN 뉴스를 통역한 결과, 새내기 동시통역사(미국생활 경험도 거의 없이 통역대학원을 갓 졸업한)만도 못하여 망신을 당한 일이 있는데 이는 결코 그들의 영어실력이 신출내기 동시통역사에 비해 뒤떨어져서가 아닙니다. 이들은 미국인에 버금가는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고 우리말 역시 완벽하지만 단지 영어와 우리말 사이를 재빨리 오가며 적절한 문장으로 변환시키는 연습이 동시통역사들에 비해 덜 되어 있을 뿐입니다.

물론 동시통역이란 집중적인 훈련에 의해 획득된 '기능'의 측면이 강하며 외국어 학습자 모두가 이러한 과정을 거칠 필요는 없습니다. 여기서 노련한 명강사와 신참 동시통역사를 비교해 본 이유는 영어도 유창하고 국어도 완벽하나 두 언어가 머릿속에서 따로 놀게 되는 경우와 영어실력은 조금 딸리더라도 영어와 국어사이를 자유로이 왕래하며 감칠 맛 나게 번역하는 경우를 비교, 분석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이 글은 영한사전만으로 공부하는 학습자들에게 계속 영한사전을 고수하라는 의미로 게재한 것이 아닙니다. 영영사전을 통해 영어식 사고체계를 확립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정입니다. 단지 영영사전만 고집하는 경우, 오랜 시일이 흐르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통번역 능력의 발달이 정체될 우려가 있으므로 우리말 의미가 모호할 경우에는 반드시 영한사전으로 확인을 해 두라는 것입니다.

● 토익 900점이면 현지인 수준이에요?
토익 900점이라면 AFN을 평균 70% 가량 알아듣고(이해한다는 의미는 아님) 영자신문도 사전의 도움없이 웬만큼 읽는 수준입니다. 그러나 말하기, 영작문등의 분야에서는 이제 겨우 초보를 면한 상태라고 보시면 됩니다.

'지금 토익 300점인 나는 800점이 최종 목표인데 900점이 그 정도라면 과연 언제나 미국 사람들처럼 영어를 할 수 있단 말인가'라 탄식하며 좌절감을 느낄 수도 있겠으나 이는 갓 영어공부를 시작한 분들의 용기를 꺾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 정도의 수준인데도 고득점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드리려는 것입니다.

외국어를 완벽하게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로서 대부분의 우리들로서는 평생토록 공부를 해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시험을 잘 본다는 것과 현지인처럼 구사한다는 것 사이에는 태산만큼의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어학학습의 최종 목표를 설정함에 있어서 '어느 선을 완벽으로 볼 것인지', 아니 그보다도 '어느 선에서 만족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미국 가서 십 년 지나니까 영어가 더 잘 나와요?
영어를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우리말 실력보다 나아질 수는 없습니다.

우리말을 조리있게 말하는 사람은 언어능력이 우수하기 때문에 어떤 외국어를 하든 잘 할 수 있습니다. 간혹 교포도 아닌 사람이 우리말도 어눌하게 하면서 '난 미국에서 10년 살았더니 영어를 더 잘해' 하고 자랑하지만 이런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외국어를 공부한지 얼마 안 되어, 즉 훈련이 부족해 말을 더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연습을 할만큼 했다고 간주할 수 있는 모국어 실력은 언어능력과 관련된 문제로서 아무리 열심히 외국어를 공부한다고 해도 자신의 모국어 수준인 언어능력의 한계를 초월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영어를 우리말보다 잘한다는 것은 교포이거나 외국에서 너무 오래 살다보니 우리말을 망각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불가능한 얘기이며 동일인물에 대하여 영어습득이 더 빠르다는 것은 영어라는 언어체계가 한글보다 두뇌 친화적이고 과학적이라는 의미가 되므로 이치에 닿지 않습니다.

언어실력은 향상이 가능하나 언어능력 그 자체는 IQ와 같아서 계발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닙니다. 물론 말하는 능력도 웅변등의 집중 훈련에 의해 어느 정도 증진될 수는 있으나 그 효과는 제한적이며 타고 난 달변가를 따라 잡기란 극히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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