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와 환자 사이엔 통역사가 없으니…

최정화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최 정화 교수를 설명할 수 있는 많은 말 중에 가장 간단한 것은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까지 모두 다섯 대통령의 한불 정상회담 통역을 전담했다는 사실이다. 프랑스 대통령 얼굴은 기억 못해도 두 대통령과 함께 한 화면에 잡히던 최 교수의 얼굴은 기억한다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그는 1981년 파리 3대학 통역번역대학원(E.S.I.T) 국제회의통역사 자격을 한국인 최초로, 이 대학 통번역학 박사학위는 아시아인 최초로 취득했으며, 프랑스정부교육공로훈장(Palme Academique), 통역계 학술업적공로상인 다니카 셀레스코비치 상 , 프랑스정부 최고훈장인 레지옹도네르(Legion d’Honneur)상을 수상하는 등 프랑스에서 공로를 인정하는 동시통역가다. 화려한 이력은 프랑스에서 얻었지만 그는 지금 우리나라를 알리기 위해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 연구원 이사장, 한국국제교류재단 <Koreana>지 불어판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수많은 국제회의와 컨퍼런스를 겪은 그에게 의사들은 어떤 존재로 비춰지고 있을까. 한국외국어대학 통역번역대학원 최정화 교수를 만났다.

 

 

Q. 귀로 듣는 동시에 머릿속으로는 다른 나라 말로 정리해서 입으로 말하는 과정을 거치려면 에너지 소모가 굉장할 것 같다. 국제회의통역사만의 직업병이 있다면?

- 국제회의 통역은 집중력, 분석종합능력, 순발력, 이 세 가지 요소가 동시에 발휘되어야 하는 고난도의 지적 작업이다. 가끔 적절한 용어가 즉각 생각나지 않아 망설이는 1~2초 시간이 몇 시간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통역하는 동안은 단 1초도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보니 짧게 두 시간 정도의 회의를 통역하고 난 후라도 에너지 소비가 엄청나다. 그래서 우리는 열량이 높거나 당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 초콜릿, 쿠키를 항상 부스 한 쪽에 대기시켜(?) 놓는다. 컨퍼런스 중간에 커피 브레이크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커피와 쿠키를 가지러 달려나가는 사람도 아마 통역사들일 것 같다. 동시통역사들에게 직업병이라면 바로 ‘분석병’이다.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때도 상대방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왜 그런 얘기를 하는지 등 논리적 흐름을 파악하곤 한다. 맥락에 맞도록 조리있게 말하고 있는지 분석하는 병이다, 하하. 그래서 이른바 ‘커뮤니케이션’, 즉 소통 능력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버릇이 있다.

 


Q. 말투나 표정을 보면 웬만한 일에는 당황하지도 않는 침착한 성격에 스트레스로 괴로워하지도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스트레스를 푸는 비결은 무엇인지?

- 통역이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통역 그 자체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진정한 통역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어려운 주제를 통역해야 할 때에는 준비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기는 한다. 하지만 그런 준비 과정 후 통역에 임할 때에는 잘 모르던 분야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는 희열을 느낀다. 예측 불가능한 수만 가지 상황을 컨트롤 하는 것도 통역사에게 요구되는 능력 중 하나다. 에너지가 넘치게 얘기하는 편이라 사람들이 귀에 편하게 잘 들려서 비교적 소통이 잘된다는 분들이 많아 통역을 한 후 뿌듯하다. 상대의 눈높이에 맞춰 적절한 어휘를 구사하려 노력한다. 통역을 하려면 우선 말하는 것을 즐겨야 한다. 또 신이 나서 통역해야 듣는 사람도 빨려든다.

 


Q. 의료분야는 전문용어가 특히 까다로운데 의학전문 회의와 세미나에서 통역을 맡은 경험이 있나?

- 그야말로 난해한 전문용어들이 넘쳐난다. 대부분의 연사들이 전문용어를 영어로 바로 이야기 하는데 이런 부분은 통역사들에게는 오히려 큰 도움이 된다. 비영어권 통역사들도 영어를 어느 정도 구사하기 때문에 아무리 어려운 용어라도 영어로 듣고 나면 해당언어로 통역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려운 전문용어를 너무나 빠른 속도로, 게다가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말해 버리는 연사들이 간혹 있다. 순차통역이면 몰라도 동시통역의 상황에서는 정말 당혹스럽다. 통역사들 아니, 원만한 회의 진행을 위해 연사들이 전문용어를 또박또박 정확히 발음해주셨으면 좋겠다.

 


Q. 우리나라 의사들의 글로벌지수(?)를 매긴다면?

- 감히 판단내릴 수는 없지만 여러 분야 컨퍼런스가 한국에서 꾸준히 개최되고, 또 해외 컨퍼런스에 참석하는 한국의사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으로 보아 의학 분야 교류가 계속 발전하는 것이 느껴진다. 이런 컨퍼런스에서는 지식 정보 교류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 폭도 넓어지니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열린 자세를 가진 의사들도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특히 의사들에게는 이러한 교류, 소통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의사마다 다르겠지만 다른 직업군에 비해 글로벌지수가 높은 것 같다.

 


Q. 프랑스에서 겪었던, 의사에 대한 인상적인 기억이라면?

- 프랑스에서는 진료를 받으려면 두세 시간은 기본이다. 접수를 하고 기다리는 것은 똑같은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진료실에 들어가면 의사들은 왜 환자가 이 병에 걸렸는지, 이 병을 잘 알고는 있는지, 어떠한 주의를 해야 하는지 정말 상세히 설명한다. 심각한 병이 아닌, 감기에 걸려도 마찬가지다. 만약 환자가 특정 의학용어나 인체장기 이름을 잘 이해 못한다면 종이를 꺼내 열심히 인체해부도를 그리기 시작한다. 환자가 외국인일 경우에는 마치 의학용어를 가르치듯이 아주 천천히 정확한 발음으로 설명을 하고 때로는 다 노트해서 주기도 한다. 바쁠 때에는 이런 절차가 귀찮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외국어를 도구로 사용해 활동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좋은 기회다, 하하. 외국 의사들이 환자에게 원인, 진행과정, 결과 등을 자세히 설명해주는 것에 비해 한국 의사들은 환자에게 적은 시간을 할애하고 궁금한 점에 대한 설명에 좀 인색한 것 같다. 환자와 좀 더 많은 대화를 하고 열린 마음으로 대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Q. 혹, 친분이 있거나 기억에 남는 의사가 있나?

- 친구 남편이다. 동생이 디스크로 며칠째 꼼짝 못하다 수술했는데 5시간이 넘는 대수술 후 경과 설명을 듣느라 뵈었을 때 등뼈 모형을 놓고 찬찬히 다 알아들을 때까지 설명하면서 용기를 줬다. 아플 때는 정말 한없이 작아지는데, 설명을 다 듣고 나올 때 다시 평상심이 됐던 기억이 있어서 그 분을 생각하면 마음이 뭉클하고 감사하다. 몸이 비교적 건강해 병원에 갈 일이 많지 않아서 주치의 같은 의사는 없지만 이런 의사분이면 주치의로도 좋겠다.

 


Q. 우리나라 의사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때 정말 두세 마디로 진료를 끝내는 분들이 간혹 있다. 가령 “어떻게 오셨어요?”, “아- 해 보세요”, “약 드시고 이틀 후에 오세요” 같이. 좀 더 환자의 말을 경청하고 아픔을 헤아릴 줄 아는 따뜻한 의사, 환자와 커뮤니케이션 할 줄 아는 의사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

 

김민아 기자

 

http://blog.naver.com/licomina/100105318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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